대통령실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연일 공개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나 부위원장이 밝힌 헝가리식 ‘출산 시 대출원금 탕감’ 구상에 대해 대통령실이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나 부위원장이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고 거듭 밝히자 대통령실은 “부적절한 언행”이라며 부위원장직 자진 사퇴를 대놓고 거론했다. 여야가 아니라 여권 내부에서 정책 방향을 놓고 이렇게 낯을 붉히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실과 나 부위원장의 갈등은 국민의힘 대표를 뽑는 3·8전당대회와 맞물려 구구한 억측도 낳고 있다. 나 부위원장이 여권 핵심부의 만류 기류에도 불구하고 전대 출마 의지를 밝히고 나서자 대통령실이 설익은 저출산 구상을 문제 삼으며 제동을 거는 것처럼 보이고 있어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비상근직이지만 7개 부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둔 장관급 직책이다. 가파른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추세를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런 점에서 “부위원장은 공직자가 아니다”라고 한 나 부위원장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엄중한 업무를 제쳐 놓은 채 “당 대표를 겸직하면 더 잘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도 ‘자기 정치’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도 정치적 오해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정부·여당에선 정책에 대한 이견이 나오면 통상 내부적으로 조율해 온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엔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나 부위원장을 직격했으니 단순한 정책 논쟁으로 볼 수 없게 됐다. 대통령실이 공정해야 할 전대를 앞두고 윤심(尹心) 개입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 부위원장 발언 논란이 계속될수록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길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당권을 둘러싼 신경전 때문에 국가 백년대계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흐지부지되어선 안 될 것이다. 대통령실과 나 부위원장은 하루라도 빨리 이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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