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방부와 무상사용 합의
상임위원회-본회의 의결 남아
군사기지로 쓰였던 흔적 고스란히
최근 평화교육 현장으로 주목받아
9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는 ‘아래에 있는 들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일제강점기에 비행장으로 조성됐다가 지금은 지역민이 농지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활주로 주변에 띄엄띄엄 있는 격납고 10여 개는 과거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쟁 반대 관련 행위 예술의 소재로 쓰인 격납고도 보였다. 제주올레 10코스가 지나는 알뜨르비행장에는 당시 관제탑 시설, 지하 벙커의 일부가 남아 있고 자그만 화산체인 셋알오름에는 고사포진지 흔적도 있다.
일제강점기 전쟁 상처를 간직한 알뜨르비행장 일대를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는 평화대공원 사업 용지인 알뜨르비행장을 무상으로 장기 사용하는 방안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실시설계 등 행정절차를 밟는다고 10일 밝혔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9월 법안소위를 통과해 상임위원회, 본회의 의결을 남겨놓고 있다.
사업이 추진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제주도의 무상 양여 요청에 대해 대체 용지가 없으면 양여가 불가능하다는 국방부의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무상 사용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제주도와 국방부는 지난해 실무 협의를 통해 제주도가 알뜨르비행장을 10년 동안 무상 사용하고 이후 10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것에 대해 합의했다.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원상 복구를 조건으로 알뜨르비행장 활주로를 제외한 지역에 영구 시설물을 건립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제주도는 2005년 ‘세계평화의 섬’ 지정에 따른 평화실천 17대 사업의 하나로 대정읍 184만9672m²에 전쟁 유적을 정비하고 전시관을 조성하는 평화대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제주도는 국방부와 협의를 통해 알뜨르비행장 169만 m² 가운데 활주로 등을 제외한 69만 m²를 평화대공원 사업 대상으로 변경했다. 알뜨르비행장 주변에는 6·25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 강병대교회 유적이 남아 있고, 전쟁예비검속으로 지역민이 집단으로 죽임을 당한 학살 터 등이 있어 평화교육 현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도는 2009년 ‘알뜨르비행장 용지를 지역 발전을 위해 제주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해군기지) 기본협약 등을 바탕으로 해당 용지의 무상양여를 요구해 왔다. 일제강점기 알뜨르비행장 용지가 지역민의 땅을 강제 수용한 것으로, 광복 이후 지역민에게 환원되지 않고 국방부에 귀속됐다는 점을 들어 무상 양여를 주장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국방부가 알뜨르비행장 무상 사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실무협의체를 통해 세부사항을 논의했다”며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평화대공원 조성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뜨르비행장은 1926년부터 조성이 시작돼 1945년까지 사용됐다. 활주로는 길이 1400m, 폭 70m 규모다. 당초 중국 공격을 위한 비행기지로 일본 항공대와 전투기 등이 배치됐고 가미카제(神風) 조종사들이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결호작전(決號作戰)’의 7호 작전 지역인 제주의 핵심 군수시설이기도 했다. 당시 제주가 일본군 중요 거점이 되면서 58군사령부 등의 병력이 요새를 구축하고 미군과의 일전을 준비했으며 종전 무렵 주둔군은 7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