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의 당권 경쟁은 사실상 김기현, 안철수 의원의 양자 대결로 정해졌다. 국민의힘 당 대표를 노리는 두 사람의 속내와 향후 정치적 미래 등을 두 차례에 걸쳐 4가지 질문을 통해 짚어본다.
① 두 사람은 왜 당 대표에 도전하나
당권에 도전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같다. ‘안정적인 당 운영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돕고 내년 총선의 승리를 이끈다’는 것.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목표일 뿐, 두 사람이 당권 도전에 나선 개인적인 이유는 다르다. 각자의 이유는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먼저 김 의원. 1959년생인 김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 생활을 했다. 이후 변호사를 거쳐 2003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부대변인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울산(울산 남을)에서 당선되면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18, 19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기세를 몰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2018년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 했지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오랜 친구 송철호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그러나 선거 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울산시장 선거에 관여했다는 이른바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졌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계 입문 이후 첫 선거 패배를 겪었지만 그는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다시 여의도로 복귀했다. 동료 의원들조차 “흠 잡을데 없는 완벽한 커리어”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20년 동안의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김 의원의 고민이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등 여권 주류로 활동한 적도 없다. 지난해 대선 때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았지만,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은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에게 쏠렸다. 여권 관계자는 “울산에서는 김기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중앙 무대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결국 김 의원이 이번 전당대회에 도전하는 목적은 ‘전국구 정치인’으로의 부상이다. ‘울산의 김기현’을 뛰어 넘어 보수 진영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
김 의원과 겨루는 안 의원은 1962년생으로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세웠다. 순수 국산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한 안 의원은 이미 정계 입문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IT(정보통신) 전문가였던 그는 2011년부터 정치인으로 변모한다.
이어 2012년, 2017년, 2022년 세 차례의 대선에 연거푸 도전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야당 인사들조차 “대한민국에 안철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인정할 정도다. 그러나 세 번의 도전 중 완주한 건 2017년 단 한 차례 뿐. 이마저도 3위에 그쳤다. 제3지대에 적(籍)을 두고 도전한 탓에 번번이 거대 양당의 벽에 가로막혔던 것.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문한 그는 3차례의 지역구 선거 승리 선거를 모두 수도권(서울 노원, 경기 성남 분당)에서 거뒀다. 다만 그 사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등 당적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지난해 대선 직전 윤 대통령과 단일화를 했던 그는 대선 이후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이 합당하면서 국민의힘 소속이 됐다.
정계 입문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당내 경선을 치르는 안 의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2027년 대선 승리다. 당 대표가 돼 국민의힘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이를 통해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전당대회 승리→총선 승리→대선 승리’라는 정치 행보 로드맵의 1단계를 시작한 셈이다.
②두 사람의 승리 전략은?
정치인의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각 선거 캠프가 정한 슬로건과 전략은 후보가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강점과, 감추고 싶어하는 약점을 모두 고려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전혀 다른 정치 역정을 거친 김 의원과 안 의원의 선거 전략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김기현 캠프는 “정통 보수를 지키는 이기는 후보 김기현”을 전면에 내걸었다. 2003년 정계 입문 이후 단 한 차례도 당을 떠나지 않고 보수 진영을 지켜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잦은 당적 변화를 겪었던 안 의원과 자연스럽게 차별화 하겠다는 것. 여기에 이번 전당대회가 ‘100% 당원 투표’로 치러진다는 점도 ‘정통 보수’를 강조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여기에 김 의원은 세 과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캠프 개소식에는 40여 명의 의원들이 몰렸고, 28일에는 지지자 8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수도권 출정식까지 열었다. 안 의원이 “무조건 사람들만 많이 모아놓고 행사하는게 이번 전당대회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견제에 나섰지만 김 의원 측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바로 ‘대세론 구축’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친윤(친윤석열) 진영의 지원에 더해 오랜 당 경험을 바탕으로 당심(黨心)을 확실히 선점해 승리하겠다는 것. 한 여당 의원은 “‘어차피 당 대표는 김기현’이라는 점을 앞세워 지지층을 모으고, 반대로 안 의원 지지층의 투표를 접게 하려는 전략”이라며 “이번 전당대회에는 일반 여론조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도 안 의원에 비해 대중 인지도가 낮은 김 의원에게 유리한 지점”이라고 했다.
다만 김 의원이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 ‘김장 연대’를 앞세우다 ‘연포탕 정치’로 돌아선 건 친윤 진영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당초 김 의원은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를 뜻하는 ‘김장 연대’를 적극 앞세웠다.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뜻)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앞세워 1위 주자를 차지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나 전 의원과 친윤 진영의 격렬한 갈등이 펼쳐진 뒤부터는 연대, 포용, 탕평을 뜻하는 ‘연포탕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연포탕 정치’라는 말은 김 의원이 직접 낸 아이디어다.
이에 맞서는 안 의원 캠프의 이름은 ‘170V 캠프’다. 내년 총선에서 170석을 얻어 승리(Victory)하겠다는 것. 당원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달린 내년 총선의 승리를 이끌 적임자는 안철수”라는 점을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특히 안 의원은 총선의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중도 표심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이는 곧 김 의원의 약점을 겨냥한 캠페인이다. 한 여권 인사는 “결국 안 의원이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도권 선거를 한 번도 치러보지 않았고, 오로지 보수만 강조하고 있는 영남 중진 김 의원에게 내년 총선의 진두지휘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점”이라고 했다. 게다가 안 의원은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간판으로 38석을 얻어낸 경험이 있다.
안 의원 측이 불출마를 선언한 나 전 의원 지지층의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안 의원은 30일 나 전 의원 지지층과 관련해 “당원들께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시는 것 같다. 다음 총선은 수도권이 중요한데 누가 수도권에서 한 표라도 더 받고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위주로 판단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만 안 의원 측도 고민이 있다. 김 의원이 “우리 당 현역 의원 중 안 의원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공격할 정도로 약한 당내 세력이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여러 의원분들이 (자신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현하셨다”고 응수했다.
동시에 안 의원 측은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당원이 83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규모 당원 가입으로 현역 의원이 특정 후보 투표를 지시하는 ‘오더 정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것. 국민의힘 관계자도 “현재 당원 비율을 보면 수도권 당원이 37% 정도로 영남권 당원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당원이 8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치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번 결과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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