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은행들의 과도한 수익성 확대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재’ 측면을 강조한 가운데 정부의 금융권 기강잡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고금리에 고물가까지 겹쳐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힘든 상황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둔 금융사를 압박해 민생경제 지원에 나서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원장은 6일 올해 금감원 업무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은행의 영업 이익이 10조 원 이상이지만 비이자 이익에서 발생한 손실을 고려하면 이자 이익은 수십 조 원에 이른다”며 “상생과 연대의 정신으로 과실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소수의 은행이 과점(寡占) 형태로 영업을 하면서 거두는 이자 이익에는 특권적인 부분이 있다고 규정하고 과도한 배당이나 수익 추구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의 공적 역할 확대를 위해 금융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비교, 평가한 뒤 공개하는 방안까지 내놨다. 그는 “사회 안정 공헌도가 높은 은행, 증권, 보험사를 국민들에게 알려드린다면 이미지 제고 등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일부 고위 임원 성과급이 수억 원 이상 된다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날 별도로 발표한 ‘주요 업무 추진방향’ 자료에서 “은행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공공성을 고려해야 함에도 최근 영업시간 정상화 지연처럼 서민과 고령층의 금융 접근성을 제한하는 등 공공성을 간과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역할은 소홀히 한 채 과도한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이사회 구성과 운영 방식을 개선하면서 직접적인 소통에 나서기로 했다. 이 원장은 “이사회와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과정이 ‘블랙박스’(깜깜이) 안에서 이뤄지는 면이 있다”며 “관치 논란까지 제기된 만큼 금융사 지배구조를 공론화 시켜 개선할 부분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사 이사회와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정례화해 이사회 운영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주요 선진국의 사례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경영진과의 친교 관계로 인한 이사회 장기 잔류 등의 문제도 있다”며 “복잡한 금융지주의 개별 이슈를 잘 이해하고 판단할 전문성이 준비된 분들이 이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CEO가 장기집권을 위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사외이사를 꾸리고, 이사회는 경영진의 의견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에 이어 ‘실세’로 꼽히는 금융당국 수장의 강도 높은 압박이 이어지자 은행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은행이 금융시장 자금 공급이나 취약계층 지원 등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자 장사나 지배구조 문제 등을 통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급 관계자는 “사회공헌 관련 지표를 구체화해서 공개하면 결국 은행들 ‘줄 세우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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