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텔란에게 물었다 “바나나 먹혔을 때 기뻤죠?”[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1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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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 전문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 뉴스레터에서 막 개막한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소식을 전해드렸었는데요.

사실 1월부터 리움미술관 연간 전시 계획에 카텔란이 있는 것을 보고 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카텔란 인터뷰는 안하나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 먹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카텔란이 그거 답 하나만 해줘도 재밌는 얘기가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카텔란은 평소에도 언론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미술관에서 받았고, 전시 개막 다음날 바로 질문을 보냈습니다.

카텔란이 거의 일주일만에 답을 보내와 오늘은 뉴스레터로 서면 인터뷰 내용 전문을 공개합니다.🔥

답변을 받은 제 느낌은.

“이 사람 정말 새침하고 냉소적이네…!” (혹은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하네)

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레터를 구어체로 작성했는데 오늘은 서면의 느낌을 살려 문어체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카텔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전시를 열었을지, 한 번 감상해보세요!
솔직히 말해봐요, 바나나 먹혔을 때 기뻤죠?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무제’(2001). 사진 뉴시스


제 첫 질문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바나나를 먹었을 때 기뻤죠?’였습니다.

‘기분이 어땠나요?’가 아니라 ‘기뻤죠?’라고 물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 때의 해프닝이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카텔란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당신의 작품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데이비드 다투나가 먹었을 때 기뻤나?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았고, 어쩌다 그런 모양이 나왔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모형 바나나를, 그 다음엔 금속 모형을 몇 달 동안 갖고 구상해보았는데, 전시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매력적인 버전이 없었다. 그 때 테스트한 작품을 집에 아직도 갖고 있다.

그러다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그냥 바나나를 그대로 설치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다 재활용이고, 일종의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

역시나.. ‘그 작품 그렇게 대단한 것 아냐’라는 아주 새침한 답변으로 제겐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사에 새로운 거 없잖아? 어차피 다 재활용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니? 라며 반문하는 모습입니다.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 구겐하임에 전시된 이 작품은 관객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구겐하임미술관


다음 질문. 또 다른 ‘카텔란 스캔들’의 서막. 2016년 작품이자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에 관한 해프닝도 물었습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이 구겐하임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이 미술관 큐레이터는 반 고흐 대신 ‘아메리카’를 트럼프에게 제안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내비친 아주 도발적인 제안이었고 이것 역시 굉장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 당신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2016)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이 반 고흐 작품을 요구했을 때,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대신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낸시는 아주 날카로운 정신을 가진 훌륭한 큐레이터다. 또 그녀는 큐레이터로서 구겐하임 소장품 무엇이든 나와 상의 없이 외부에 대여해 줄 권리가 있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

저는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잘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는데, 카텔란은 즉답은 피했습니다. 당시 결정에 자신은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면서요… 그럼에도 백악관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겠다는 답으로 대신했네요.
왜 그렇게 선 넘는 걸 좋아해요?


선 넘기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듯한 카텔란의 초상 사진. 사진: 리움미술관 제공


그 다음 질문은 리움미술관 전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미학적으로 열심히 감상하기보다 그냥 슬쩍 보고 ‘이렇게 선을 넘네’라는 단상의 연속이죠.

― 당신은 사람들을 도발하는 것을 좋아하나? 미술계 사람들도? 그렇다면 왜 그런가?

“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지닌 내 성향이 작용한다고 본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정해진 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그것에 언제나 저항하려고 한다.

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그랬고,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가 그랬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만한 파워를 가지길 바란다.

과거에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성에 대해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언제나 권위와 맞서는 과정에 있으며, 아픈 곳을 긁어주는 손톱이다.“

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도발과 전쟁에 관한 비유였습니다. 선을 넘는 도발이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감수하더라도 예술이 이런 힘을 갖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돼?’라고 느꼈던 대목과 연결되는 관점이지요. 호불호는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 당신은 작품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왜 스스로를 작품의 플레이어로 결정했나?

“어떤 일을 처음 할 때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엔 내 얼굴을 넣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 자화성은 굉장히 직설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몰랐던 부분을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고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화상은 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 모든 작가들도 자화상을 그리며 이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화상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제(topos)다.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찰스 디킨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시니컬한 갑옷 속 숨은 고백…‘나는 죽음이 두렵다’
― 당신의 전시는 미술관을 잘 만들어진 소극(farce)이 펼쳐지는 극장, 혹은 어둡고 우울한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리움 미술관의 공간을 어떻게 접근했나?

“그 작품들은 어디에 전시되든 공간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장 누벨이 만든 미술관 공간은 무척 아름답다. 분명 도전적인 장소였지만, 공간 일부가 내게는 지하철역을 연상케 했다. 또 전시관은 상점의 쇼윈도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간에 맞춰 작품을 약간 수정했고, 건축가가 만든 공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 그런데 전시 제목은 ‘WE’이다. 이 제목은 냉소적 의미인가 아니면 긍정적 의미인가?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THEY)’로 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 완전한 냉소적 의미가 표현됐을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은 정해져 있되 그 앞장은 알아서 써내려가야 하는 한 권의 책 아닌가?“

저는 이 답변이 재밌었습니다. 전시장에 가면 정말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전시 제목이 ‘WE’여서 조금 헷갈렸거든요. 이 어두운 냉소가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걸까(냉소적 의미), 아니면 이런 어두움도 스스로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말하는 걸까(긍정적 의미) 궁금했습니다.

카텔란은 전시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하고도 싶었다며, 냉소의 끝판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답을 해주었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풀어서 말하면 이거죠.

“우리 어차피 다 죽을 건데, 그 전에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야 되잖아?”

카텔란이 20대 때 작고한 자신의 어머니를 본딴 밀랍 인형을 냉장고에 넣은 작품 ‘그림자’(2023)


이제 마지막 질문과 답변입니다.

― 리움 미술관은 당신의 작품 ‘모두’(2007)와 ‘우리’(2010)가 한국인들에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한 것은 서울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나는 나의 작품 ‘모두’가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내 작품 ‘우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관이라고 생각해 놀랐다. 관에 두 명을 함께 넣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나의 작품 상당수가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놀랐다. 아마 일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작품에서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리움미술관에 퍼뜨린 카텔란. 그 자신도 어쩌면 죽음이 두려워 계속 작품 속에서 죽음의 악령을 물리치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네요.

전시장 속에서 카텔란의 새침하고 무심한 냉소를 마주한 다음, 그 차가운 껍질 안에 숨겨진 겁먹은 인간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카텔란의 작품 ‘사랑이 두렵지 않다’(2000)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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