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배터리, IRA수혜 흔들]
포드, CATL과 美에 배터리공장… 기술제휴 방식 채택… 겉은 美기업
‘中배제’ 위배 안돼 보조금 받아… 韓, 전기차 이어 배터리 타격 우려
미국 2위 자동차 포드가 세계 1위 중국 배터리사 CATL과 손잡고 35억 달러(약 4조5000억 원)를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합작사가 아닌 기술제휴 형식으로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규제를 우회해 정부 보조금을 챙기면서도 저렴한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의도다. 그나마 한국 기업에 유리했던 IRA의 중국 배터리 배제 원칙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포드는 13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미시간주 마셜에 CATL 기술 기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2026년부터 가동하고 2500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언론에 거론되어 온 양사의 협력을 이날 공식화한 것이다. 새 공장의 생산 능력은 35GWh(기가와트시) 규모, 전기차 40만 대 분량이다. 이번 배터리 공장은 기술 라이선스 방식이라 포드가 100% 지분을 갖게 된다.
이는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의 SK온, LG에너지솔루션과 택했던 합작사 설립 방식이 아니다. 포드는 CATL 기술을 가져오되 외관은 미국 기업 형태를 취해 중국 자본을 들여왔다는 정치적 공세를 피하고, IRA 규제를 우회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IRA는 2024년부터 중국 등 ‘우려국가’ 제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한다.
포드가 중국과 손잡은 것은 원가 절감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LFP 배터리 생산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기차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LFP는 가장 저렴한 배터리 기술”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 주력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한 번 충전 시 주행거리가 훨씬 길지만 LFP보다 제조원가가 최대 30%까지 비싸다. 이 때문에 테슬라 모델3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저가 모델에는 중국의 LFP 배터리를 속속 들이고 있다. 포드는 자동차 옵션을 정하듯 소비자가 직접 NCM과 LFP 배터리를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IRA로 미국에서 중국을 제치고 배터리 시장 세계 1위에 도전하려던 한국 기업으로서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CATL은 지난해 세계 배터리 점유율 37%로 세계 1위 지위를 확고히 해왔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로 자동차 산업이 피해를 입는 반면 배터리 분야는 상대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면서 “우리가 IRA 리스크로 혼선을 빚던 와중에 허점을 찔렸다”고 말했다.
저가 배터리 필요한 美포드, 中 손잡아… 활로 찾던 韓기업 허찔려
‘IRA 우회’에 뒤통수 맞은 K배터리
中 CATL ‘리튬인산철’ 값 30% 낮아 IRA 허점 파고들며 美안방 진출 내수위주 中배터리 글로벌 보폭 넓혀 LG-SK-삼성 등 시장 점유율 비상
“포드는 두 가지 배터리 방식 생산 기지를 모두 갖춘 미국 최초 기업이 됐다.”
짐 팔리 미국 포드자동차 최고경영자(CEO)는 13일(현지 시간) 미시간주 로물러스의 배터리 개발센터 ‘이온 파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SK온과 합작 생산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이어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도 확보하게 됐다는 선언이다. 미시간 공장에서는 2026년부터 생산이 이뤄진다.
중국 최대 배터리업체인 CATL이 미국의 ‘안방’에 진입한다는 소식에 국내 배터리업계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 미국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안에 따른 중국 견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데다 북미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저가형 LFP 배터리 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포드는 CATL이 가진 광물 배합 기술을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가져오는 대신 100% 포드 소유 ‘미국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중국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배터리라 해도 미국에서 미국 기업이 생산할 경우 IRA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마린 자자 포드 최고고객책임자(CCO)는 “미시간 공장 생산이 시작되면 최대 7500달러 보조금 중 ‘원산지 자격 요건’을 갖춰 절반은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ATL 입장에선 당장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첫 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유럽과 아시아에 제조 공장을 둔 CATL은 그간 북미 시장을 겨냥한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해왔지만 미중 갈등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삼성증권은 13일 “CATL이 재무적 성과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이번 포드 계획에 동의한 이유는 IRA에 10년이라는 기한이 있기 때문”이라며 “효력이 끝나면 미국 내 안정적인 배터리 사업 주체로 남아 지속적인 사업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채굴된 배터리 핵심 광물을 배제하는 방향이었던 IRA 조항도 일부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 IRA 백서에는 ‘광물 가공 등 부가가치의 50% 이상을 창출한 지역이 미국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경우’에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산 리튬을 들여와 미시간주 공장에서 양극재 등 핵심 부품을 제조할 경우 IRA 규제를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 배터리를 탑재했거나 중국 광물을 소싱한 자동차에 전기차 보조금을 한 푼도 주지 않도록 규정한 IRA로 CATL을 비롯한 중국 경쟁업체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기대해 왔다. IRA 발표 이후 중국 외 지역에서 원자재 확보에 나서며 활로를 모색해 왔지만 이번 발표로 허를 찔렸다.
포드가 일종의 ‘꼼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손잡은 이유는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업계 가격 인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LFP 배터리를 앞세워 이 같은 우회로를 지속할 경우 아직 LFP 배터리를 갖고 있지 않은 국내 업계 북미 시장 입지가 축소될 우려도 제기된다. LFP 배터리는 국내 업계 주력인 NCM 배터리에 비해 화재 위험성이 적고 가격이 30%가량 저렴하지만 출력과 주행거리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업체의 기술력 확대로 LFP 배터리 출력 수준도 상당 부분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도 LFP 배터리를 연구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양산을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내수시장 위주였던 중국 배터리 업계 글로벌 보폭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세계시장에서 CATL 제품 사용(배터리 사용량)은 131% 늘어나며 고속 성장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에서 엔트리급 모델 등에 LFP 배터리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완성차 입장에선 중국 배터리 업계가 갖는 매력이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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