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월 23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섬 관음사에 봉안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한국인 절도범 10명이 붙잡혔다. 절도 전과 13범이었던 김모 씨(당시 70세) 일당은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훔쳐 와 비싸게 팔 생각으로 2012년 10월 관음사에서 이 불상을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본 정부와 관음사는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불법 반출된 일본의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불상은 나가사키현 지정 문화재로, 관음사 소유라는 주장이다.
#.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 부석사에서 만들어졌다. 1951년 불상 속 복장유물에서 ‘1330년 2월 서주 부석사에 관음상을 만든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서주는 충남 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이다. ‘고려사’에는 ‘1352~1381년 왜구가 서주 일대를 다섯 차례 침략했다’고 기록돼 있다. 서산 부석사는 14세기 후반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해간 것으로 보고, 2016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약탈당한 불상이므로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인 절도범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온 14세기 고려 불상은 누구 소유일까. 1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지며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던 이 사건에 대해 1일 대전고법 제1민사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금동관음보살상을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부석사 측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서산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했던 2017년 원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
부석사 측이 10일 상고장을 제출하며 최종판단은 이제 대법원 몫이 됐다. 현재 임시로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고려 부석사와의 동일성 입증 안돼”
대법원 판단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법조계에선 2심 판결을 지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국제문화재법연구회장인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가 불명확한 역사의 빈칸을 인정하고, 현대 형성된 국제법과 민법의 논리에 따른 판결”이라고 평했다.
불상의 소유권을 가르는 첫 번째 쟁점은 14세기 왜구에 의한 약탈 여부인데, 이와 관련한 명확한 사료가 없다. 문화재청이 2014년 12월 대전지검에 제출한 ‘불상 반출 경위에 대한 감정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 불상의 국외 반출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 입증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하여 불법 반출하였다고 볼 만한 상당한 정황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소유 경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건 일본 관음사도 마찬가지다. 관음사 측은 “1526년 조선에서 적법하게 이 불상을 물려받고 1527년 일본으로 돌아와 관음사를 창건해 본존불로 안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두 번째 쟁점은 ‘현재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가’이다. 약탈됐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현 부석사가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고려시대 부석사와 같은 절임이 입증돼야 한다고 2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다. 숭유억불을 기조로 했던 조선이 전국의 사찰 수를 제한하며 남겨둔 사찰의 명칭이 실록에 기록돼 있지만 ‘부석사’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 부석사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로 등록된 건 1962년이다. 재판부는 또 왜구의 침략으로 서주 지역의 피해가 극심했다면 당시 부석사가 아예 없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확실한 건 관음사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부터 한국인 절도범에 의해 불상을 빼앗기기 전인 2012년 10월까지 이 불상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민법은 20년간 타인의 사물을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하면 소유권을 얻었다고 인정한다. 우리 사법체계는 물건의 경우 소재지법(이 사건에서는 일본의 민법)을 따른다. 결국 전후 사정 파악은 어렵지만 이미 민법상 취득시효를 채운 만큼 소유권이 일본 관음사에 있다고 재판부는 본 것이다.
●“일본 관음사에 불상 되돌려줘선 안 돼”
2심 판결 이후 불상을 일본에 그대로 돌려줘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외규장각 의궤 환수를 이끈 김경임 전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은 “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선 안 된다”며 “법원도 부석사 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됐을 거라는 정황을 인정한 만큼 부석사가 불상을 되찾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1982년 6월 멕시코 변호사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14~15세기 아즈테카 달력 ‘오뱅 토날라마틀(Tonalamatl de Aubin)’을 훔쳐 멕시코로 가져왔다. 프랑스 측은 “명백한 절도 행위”라며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멕시코 정부는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라며 맞섰다.
양국 정부는 법적 분쟁 대신 외교 협상을 택했다. 그리고 3년마다 갱신을 조건으로 멕시코 대여에 합의했다가 2009년에는 영구대여 협정을 맺었다. 유물의 소유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갖되 소장은 멕시코가 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반환과도 다르지 않은 조치다. 김 전 국장은 “불상을 일단 일본 관음사에 되돌려주면 일본 측은 이 같은 협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멕시코처럼 우리 정부가 불상을 갖고 있으면서 유물을 영구 소장하는 방향으로 일본 측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 약탈 피해국 품격 보여야”
반면 대법원이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면 불상을 일단 관음사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지현 건국대 세계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외교적으로 문화재 반환 협상을 할 때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면 안 된다”며 “절도와 같은 방식을 결과적으로 용인하는 건 오히려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화재 약탈 피해국의 품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박물관으로부터 ‘파르테논 마블스’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가 한 예다. 김 교수는 “그리스 정부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각 국가를 초청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약탈 문화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면서 협상력을 키웠다”며 “법에 따라 일단 관음사에 불상을 반환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품격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품격을 보여야 다른 불법 반출 문화재의 환수에도 세계가 공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김 교수는 이 경우에도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규호 교수 역시 “법은 불상의 소유권을 판가름할 뿐”이라며 “한·일 양국 정부가 외교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한국에서의 전시나 대여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판결문에 ‘유니드르와(UNIDROIT) 협약’을 언급했다. 1995년 제정된 이 국제협약은 불법 반출 문화재를 기원국에 반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한국과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소유권 판결과는 별개로 이같은 협약의 취지를 고려해 불상의 반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석사 불상 논란을 계기로 일본 내 한국 문화재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일본에는 박물관, 기관 등에 우리 문화재 9만5622점이 흩어져 있다. 민간이 소장하는 문화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은경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이 사건으로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의 존재가 수면 위로 새삼 드러났다”며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이 찾아내고 약탈 여부를 학술적으로 입증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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