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오카네, 머니. 세상 그 누가 돈에서 자유로울까요. 동전도 지폐도. 돈은 뒤집어서 봐도 돈일 뿐입니다. 그래도 돈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있습니다. 은행, 보험사, 카드사. 그리고 이들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가 돈의 행간을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
돈의 뒷면, 첫 이야기는 요즘 같은 고금리 시기에 은행들이 떼돈 번다는 이야기의 진실과 그 이유입니다.
세 줄 요약부터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 금리가 오를 때 은행은 이자 수익이 커지는 것이 맞고 이런 현상이 국내만의 일은 아닙니다.
- 오른 금리가 대출에는 빠르게 적용되는 반면 예·적금에는 별로 반영되지 않거나 더디게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 여기엔 금리가 올라도 은행이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월급통장 등의 ‘저원가성 예금’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합니다.
● 기준금리, 1년 만에 1.00%에서 3.50%로
최근 온 국민이 마주하고 있는 고금리 상황. 출발점은 아무래도 한국은행입니다. (물론, 한국은행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초 1.0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내내 줄기차게 올렸습니다. 지난해 말 3.25%까지 올린 데 이어 올해 초에는 3.50%까지 올렸습니다.
긴 역사에 비춰보면,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매우 높다, 고 얘기하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1.00%에서 3.50%가 됐으니 2.50%포인트를 올린 것이고 3.5배가 된 것입니다.
불과 1년 만에 말입니다.
기준금리 변동은 경제 활동 전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은행들도 기준금리를 반영해 앞다퉈 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덩달아서 예·적금 금리도 올랐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한풀 꺾였습니다만, 지난해 말에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8%를 돌파하고 5%대 예금 금리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로 금융권이 떠들썩했습니다.
● “국내은행, 1~3분기 기준 지난해 이자 이익이 2021년보다 20% 늘어”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출 금리가 올랐지만 예금 금리도 함께 올랐으니 은행 입장에서는 ‘똔똔’ ‘쌤쌤’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은행이 돈을 엄청나게 번다고 난리인 걸까.
여러 숫자가 있겠습니다만, 금융당국에서 잘 정리해 준 숫자를 한번 보겠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22.3분기 기준 국내은행 영업실적’ 자료에 적당한 숫자가 있는데요.
2022년 1~3분기(1~9월) 국내은행의 이자 이익은 40조6000억 원이었습니다.
2021년 1~3분기의 33조7000억 원에 비해 6조9000억 원이 늘어난 것이고 증가율로는 20.3%에 이릅니다.
이자 이익은 말 그대로 금융사가 대출 등으로 돈을 빌려줘서 발생한 수입에서 예금 등의 자금 조달에 따른 비용을 뺀 것을 말하는데요.
금감원은 은행의 이자 이익 증가를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 대출채권 등 운용자산의 지속 증가
- 순이자마진(NIM) 상승
빌려준 돈의 규모 자체가 커진 양적 요소(운용자산 증가)와 이자에 따른 마진율 상승이라는 질적 요소가 함께 작용했다는 얘기입니다.
● “금리 오르면 이자 마진율 높아져”
두 요소 가운데 금리 인상과 연관된 부분은 아무래도 마진율 상승일 텐데요.
이 자료에는 금리 상승기에 은행의 이자 관련 마진율이 좋아지고 있는 수치도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습니다.
국내 은행들의 이자수익률(원화대출채권 기준 평균금리)과 이자비용률(원화예수금 기준 평균금리)이 다 공개돼 있는 건데요.
-이자수익율은 은행이 빌려준(대출해 준) 돈의 평균 금리.
-이자비용률은 은행이 빌린(예금으로 받아놓은) 돈의 평균 금리.
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2021년 4분기에서 2022년 3분기까지를 기준으로
은행의 이자수익률은 2.70% → 2.93% → 3.16% → 3.57%로 높아졌습니다.
세 분기 동안 0.87%포인트가 올랐네요.
같은 기간에 이자비용률은 0.83%, 1.00%, 1.13%, 1.44%로 변화했습니다.
세 분기에 걸쳐서 0.61%포인트가 오른 것입니다.
은행은 결국 돈 빌려서(수신, 예금) 돈 빌려주는(여신, 대출) 장사를 하는 곳인데요.
기준금리가 오르는 동안 빌려주는 금리가 빌리는 금리보다 0.26%포인트 더 올랐으니 돈을 더 벌 수 밖에 없겠습니다.
● “금리 인상, 대출 금리에 더 빠르게 반영”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기준금리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금리가 돈을 빌려오는 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상황…
여기에는 은행이 판매하고 있는 대출 상품과 예·적금 상품의 특징이 다르다는 점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대출은 금리 변화가 빠르게 반영되는 반면에 예·적금은 이보다 느리다는 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 다양한 종류의 대출은 대부분 수개월 단위로 시장금리를 반영해서 금리가 다시 산정됩니다.
특히, 국내의 경우 가계 대출에서 변동금리 상품 비중이 높은 편이라 이런 반영이 더 빠를 수 있겠습니다.
가계 대출 중에서 비중이 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첫 5년 동안 금리가 고정되는 ‘혼합형’ 상품이 고정금리에 준하는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은행들로서는 최장 30~40년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 기간 동안 금리를 고정해 줄 수는 없으니 만들어진 절충안인 셈인데요.
이런 상품들 역시 5년이 지나면 금리가 주기적으로 변동되기 때문에 대출 금리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변화에 빠르게 연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정기 예금의 경우 1년, 2년 등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찾지 않고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정해진 이자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출 가운데 상당수는 금리 상승기에 가만히 있어도 적용되는 금리가 올라가는 반면 대부분의 예금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 “금리 올라도 이자 안 주는 ‘꿀단지’ 저원가성 예금이 큰 몫”
그리고 금리가 오를 때 예금 금리가 빠르게 오르지 않는 현상에는 은행들의 숨겨진 ‘꿀단지’가 사실 큰 몫을 합니다.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게 돕는 계좌들, 바로 ‘저원가성 예금’인데요.
일정한 기간 동안 돈을 묶어 두는 정기 예금의 경우 금리가 오를 때 은행들이 상당히 높은 금리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원가성 예금’은 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이렇다 할 이자를 주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원가성 예금은 대부분 고객이 원할 때 돈을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 상품들인데요.
개인 고객의 보통예금이나 급여통장, 기업 고객의 수시입출식예금(MMDA) 등이 대표적인 저원가성 예금입니다.
예시를 찾아서 멀리 갈 것 없이 제 급여 계좌를 한번 볼까요.
KB국민은행의 ‘직장인우대종합통장’인데 기본 이율이… 연 0.1%네요.
기대 안 하긴 했지만 0.1%라니 너무하네, 라고 하기엔 급여통장 대부분이 동일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상 이자 없는 계좌에 머물러 있는 돈의 크기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큽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총 수신 잔액은 2243조5000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정기 예금이 944조2000억 원, 수시입출급식 예금이 899조2000억 원입니다.
저원가성 예금의 규모가 높은 금리로 이자를 주는 정기 예금 규모에 맞먹는 수준인 것인데요.
월급통장의 이자가 거의 없는 것을 알기에 개인들은 이 계좌에 수십 만 원씩만 둔 채로 유지를 하더라도 이 수십 만 원이 모이고 모이면 큰 금액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원가성 예금은 고객이 당장이라도 찾아갈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정기예금에 비해서는 운용에 제약이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은행들에게는 큰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사실상 이자를 주지 않는 예금을 바탕으로 대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은행들의 이 ‘꿀단지’가 이렇게 모인 결과가 얼마나 큰지를 보면 금리가 오를 때 은행들이 돈을 더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 저원가성 예금이 은행의 ‘핵심 예금’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국내에서 4대 시중은행으로 불립니다.
덩치가 큰 이들 은행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총 32조 원가량이었습니다.
2021년에 26조 원가량의 이자 이익을 거뒀으니 1년 만에 6조 원가량, 20% 이상 늘어난 셈입니다.
지난해 은행들의 이자 이익 증가는 기업 대출 증가 등이 주요인으로 꼽히는데요.
금리가 오르자 높은 이자를 주는 ‘고원가성 예금’인 정기 예·적금 등으로 상당액이 빠져나갔음에도 여전히 큰 규모의 저원가성 예금이 뒤를 든든하게 받쳤습니다.
이 저원가성 예금을 4대 시중은행이 조금씩 다르게 부릅니다만, 빠지지 않는 단어는 바로 ‘핵심’입니다.
핵심예금, 유동성 핵심예금, 핵심저금리성 예금, 핵심저비용성 예금… 등으로 명칭이 조금씩 다르게 부르고 세부 분류도 다릅니다만, 은행 영업의 핵심 근간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런 월급통장 같은 예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는 노력은 그동안 모든 은행이 치열하게 벌여온 경쟁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개인, 대학, 기업, 관공서 등에 각종 금리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거액의 기부까지 하면서 하나라도 더 많은 통장을 만들도록 하는 노력들이 고금리 시기에 큰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물론, 고금리로 개인과 자영업자, 기업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은행이 큰 수익을 누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최근 들어 강력한 문제 제기가 이뤄진 상황입니다.
이 이슈는 다음에 또 얘기해 보겠습니다.
고금리 시기에 은행의 이익이 증가하는 이유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은 독자분이라면 ‘최근 은행의 수익 및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지난해 한국은행 블로그 글(http://www.bok.or.kr/portal/bbs/B0000347/view.do?nttId=10072473&menuNo=201106&searchOptn2=FNNC&pageIndex=1)을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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