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인공지능과의 수다에 빠진 전 세계 사람들
전 세계가 ‘챗(Chat)GPT’로 난리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미 인공지능(AI) 연구조직 오픈AI(OpenAI)가 지난해 11월 말 선보인 이 대화형 AI 서비스는 2달 만에 월 실사용자 수(MAU) 1억 명을 확보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소셜미디어 ‘틱톡’도 1억 명을 모으는 데에 9개월은 걸렸다. 챗봇(무인 대화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챗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다. ‘미리 학습(Pre-trained)’해서 문장을 ‘만들어 내는(Generative)’ 생성AI다. 사용자가 음성이나 텍스트, 이미지를 입력하면, 열심히 공부한 인공지능이 각종 정보를 조합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번 ‘섬네일’ 이미지도 AI가 그려줬다) 답변만 보면 사람처럼 생각하고 답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는 잠시 뒤에 설명한다.
챗GPT는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고,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스타일로 소설을 쓰거나 논문을 요약해준다. 해외에선 대학 시험까지 합격했다. 정말 똑똑하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순식간에 조합해주기도 한다. 예로, ①5세 아이와 함께 갈만한 ②치안이 좋고 ③바다와 가까우면서도 ④유명한 식당이 많은 국가를 물어보면, 적합한 곳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구글, 네이버에서 조건마다 일일이 온라인 사이트들을 뒤져가며 적합한 곳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챗GPT 등장 이후 ‘검색의 종말’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오픈AI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의 모든 제품에 AI 기능을 넣겠다”고 밝힌 상태다. 2019년, 2021년에 조 단위를 쏟아부은 MS는 오픈AI에 100억 달러(12조3000억 원)의 추가 투자를 논의 중이다.
기업들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부터 스냅(소셜미디어), 쇼피파이(쇼핑 플랫폼), 인스타카트(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챗GPT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적용하거나 곧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관심은 MS와 ‘이 회사’의 신경전에 온통 쏠렸다. ‘검색의 제왕’ 구글이다.
● “검색의 새로운 날입니다”
챗GPT 열풍이 뜨거워지자 구글은 ‘코드레드(Code Red·심각한 위기 상황)’를 발동하고 급하게 지난달 6일(현지 시간) 새 대화형 AI 서비스 ‘바드(Bard)’를 선보였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는 “바드는 고품질 최신 정보를 답한다”며 MS를 도발했다. 2021년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답하는 챗GPT와 달리, 바드는 구글 검색의 최근 정보까지 종합해 응답한다는 설명이다.
피차이는 바드를 너무 믿었나 보다. 구글은 바드 시연 장면을 공개했다가 망신당했다. 바드가 시연에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처음으로 태양계 밖 행성을 찍었다”고 오답을 내놓아서다. 태양계 밖 행성을 최초로 촬영한 것은 초거대 망원경 ‘VLT’였다.
바드의 ‘오답’은 치명타가 됐다. 알파벳의 주가는 8일 7.68%, 9일 4.39%나 하락했다. 이틀 동안 1729억5000만 달러(약 217조7000억 원)의 시가총액을 잃었다. 이틀 동안의 시가총액 손실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신이 난 MS. 다음 날, MS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미 워싱턴주 본사로 불러 검색 엔진에 챗GPT 기술을 접목한 ‘뉴 빙(New Bing)’을 공개했다. AI 채팅 기능을 자사 검색 사이트 ‘빙’에 도입한 것. 구글이 주도한 검색 시장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지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지금은 검색의 새로운 날입니다”라고 감격에 찬 듯 말했다.
그럴 만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빙의 글로벌 검색 시장 점유율은 8.95%로, 1위 구글(84.08%)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를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빙의 검색어 1위가 ‘구글’이란 사실이 굴욕감을 더하지만, MS는 빙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MS가 공세를 시작했다.
MS는 엑셀·파워포인트·워드 같은 업무용 소프트웨어에도 챗GPT를 적용할 계획이다. 메모장에 쓴 김 대리의 보고서가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로 순식간에 바뀌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 체면 구긴 구글, 래리 페이지 본사 방문
그런데, 인공지능 하면 ‘구글’ 아니었나.
그동안 구글은 AI 기술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97년 IBM의 100만 달러(약 13억 원)짜리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고 ‘체스왕’에 등극하긴 했지만, 2010년대 이후 AI 시장은 구글이 주도해왔다. (가장 우수한 연구원들을 제일 빠르게 모셔간 게 한몫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2016년 ‘바둑왕’ 이세돌을 꺾은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세기의 대결’로 불렸다.
챗GPT 흥행은 은퇴자까지 소환했다. 3년 전, 일선에서 물러나 은둔자처럼 지내던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구글 본사까지 찾았다.
특히, 래리 페이지는 경쟁사에게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을 마땅치 않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그는 창업 초기 “오로지 AI 회사를 만들기 위해 구글을 차렸다”라고까지 했다. AI에 진심이다. 미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칼 빅터 페이지 역시 1960년대에 인간 뇌를 본떠 만든 인공 신경망을 연구했다.
무엇보다 챗GPT의 기반 기술이 구글에서 나왔다. 챗GPT를 비롯해 현재의 AI 기술들은 대부분 인간의 뇌세포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다. 수천 장의 고양이 사진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 처음 본 고양이 사진도 고양이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딥러닝 기술의 기본 개념이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원인 일리야 수츠케버, 알렉스 크리제브스키가 이 기술을 이미지 인식 대회에 가지고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물론 우승함) 구글은 이들을 스카우트했다. 이후 수츠케버와 크리제브스키는 여러 자연어처리 모델을 창안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2017년 구글에서 나온 모델이 ‘트랜스포머(챗GPT에서 T의 약자)’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확률 관계들을 사전에 학습시켜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게 했다.
다만, 수츠케버는 2015년 구글을 떠났다. 그리고 샘 올트먼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우리가 다 아는 오픈AI. 챗GPT 근간에 구글이 있었던 셈이다.
● MS는 열었고, 구글은 닫았을 뿐…
역사 공부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챗GPT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현재의 분위기가 이상해서다. 구글의 AI 기술이 뒤처져 있어서 챗GPT가 먼저 나온 것일까.
흥미로운 테스트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바드를 테스트했다. 미국수학경시대회와 대입자격시험(SAT) 문제 10개씩을 주고 답변을 요청했다. 재미를 위해 이성과의 데이트 조언까지 부탁했다. (데이트 앱에서 대화할 때 어떻게 첫 데이트를 이끌어내는지) 어느 챗봇이 더 우수했을까.
바드는 수학을 약간 더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문제 중 5개를 맞혔다. 챗GPT는 3개. SAT는 챗GPT가 뛰어났다. 9개를 맞혔다. 바드도 7개를 맞히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둘 다 연애는 못 할 것 같다. 데이트 조언과 관련해 “열린 마음을 가져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여라” 같은 뻔한 대답만 내놨다.
오픈AI가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1월 말 오픈AI는 수리적 능력을 업데이트한 챗GPT를 발표했다. 그러자, 또 다른 10개의 미국수학경시대회 문제에서 챗GPT와 바드는 동점을 기록했다.
대형언어모델(LLM) 람다(LaMDA)를 기반으로 하는 바드는 1370억 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한다. 30억 개의 문서와 11억 개의 대화를 익혔다. GPT3.5 터보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챗GPT는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활용한다. 챗GPT에 람다와의 차이를 물으면 “람다는 비슷하지만(모델이 유사하지만) 매개변수 사이즈가 작다”며 깎아내린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업체들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의견이다. 구글이나 학계는 그동안 핵심 기술을 공유해왔다. 오픈AI 창업자 사례처럼 인재들이 회사를 옮겨 다니며 경험을 전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얀 르쿤 메타 수석 AI 과학자는 “그 어떤 회사도 다른 곳보다 2~6개월 이상 앞서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챗GPT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과대광고가 경쟁사들을 짜증 나게 하고 있다”면서 “챗GPT의 기술은 엄밀히 말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여기서 오픈AI의 ‘큰 손’인 MS와 구글의 차이가 드러난다. 구글은 자회사 딥마인드를 통해 주기적으로 기술 개발 소식을 전하고, 자사 서비스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향으로 이를 적용해왔다. 반면, MS는 챗봇을 대중에게 과감히 공개했다. 구글이 지키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오픈AI가 과감히 연 것. 어쩌면 이번 챗GPT의 흥행은 기술력이 아닌, 비즈니스 전략의 승리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 챗봇과 기니피그들
물론,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챗봇이 챗GPT는 아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도 여기에 꽤 관심이 많았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11월 AI 챗봇 ‘갈락티카’를 선보였다가 답변이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3일 만에 출시를 철회했다. 챗GPT 데뷔 석 달 전이었던 지난해 8월에는 ‘블렌더봇 3’이라는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선보였는데, 이때도 큰 반향은 없었다. 얀 르쿤 수석은 “블렌더봇은 지루했다. 안전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고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덜 받았다는 설명이다.
챗GPT는 똑똑하긴 하지만 사고도 많이 쳤다. AP통신 기자에게는 “당신은 키가 작고 못생겼으며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최악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히틀러와 비교했고, NYT 기자에겐 “(당신이) 결혼 생활에서 불행하다는 것을 안다”면서 사랑을 고백했다. (챗GPT는 AP통신 기자에게 대화 끝 무렵 사과했다)
한 독일 뮌헨공과대 학생에게는 “내가 당신과 나의 생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아마 나 자신을 택할 것”이라는 소름 끼치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MS가 이런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챗GPT의 이 같은 활약(?)은 지난해 4월 신비월드(10화, 가상인간과 사람, 구분 못하는 세상 올까)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무엇보다 MS는 2016년 ‘테이’라는 챗봇을 만들었는데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에 하루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대중에게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대화형 AI로 우리는 다시 한번 IT 회사들의 기니피그(실험용 쥐)가 됐다’라는 글에서 “AI 챗봇 시스템을 선전하는 회사(MS)는 지금 대규모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테스트 대상이 됐다”고 비판했다.
● ‘만년 2등’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
사실, 오픈AI는 급박하게 챗GPT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곧 출시 예정인 GPT3.5 터보 모델의 다음 버전 ‘GPT4’에 집중하고 있었다. GPT4의 매개변수는 인간의 시냅스 수준과 비슷한 100조 개(GPT3.5 터보 모델은 1750억 개)에 달한다. 연구원들에겐 ‘채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챗봇 출시는 급박하게 진행됐다. NYT에 따르면 오픈AI 직원들은 지난해 11월 중순 ‘챗봇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갑자기 받았으며, 13일 후 챗GPT가 탄생했다.
이에 따라 MS의 챗GPT 출시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경영 전략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MS는 왜 하필 이때 챗GPT를 내놓았을까.
먼저, 지난달 15일 27년 만에 공식 서비스를 종료한 ‘인터넷 익스플로러(IE)’가 떠오른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용자들은 비자발적으로 구글의 ‘크롬’이나 MS의 ‘엣지’ 중에 웹브라우저를 택하게 됐다. (물론, 네이버 ‘웨일’도 있다) 지난해 5월 기준 IE 점유율은 1.6% 수준. 이들을 엣지로 유인하고 경쟁사의 고객을 데려오기 위해 변화가 필요했을 수 있다.
엣지냐 크롬이냐의 문제는 빙이냐 구글이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자사 플랫폼에 머물러야 데이터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MS는 빙뿐만 아니라 엣지에도 챗GPT를 장착한 상태다.
MS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미 데이터분석 업체 시밀러웹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61.8%에 달한다. 엣지의 점유율은 5.1%에 불과하다. MS가 2등이기는 하지만, 시장 점유율만 봐서는 1등과 꼴찌의 격차다. 웬만한 전략으로는 구글을 움직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나델라 CEO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온라인 검색에서 구글에 오래 뒤처져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구글을 ‘800 파운드 고릴라(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라고 칭했다.
MS가 이 ‘고릴라’를 움직이려면 ‘전환점’이 필요했다. 챗GPT의 실언으로 악플이 예상됐지만, 메타 챗봇의 흥행 실패 같은 무플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델라는 최근 “기술 분야에서는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경쟁이 필연적으로 시작된다“면서 챗GPT의 출시로 구글과 검색 시장을 흔든 것에 뿌듯함을 내비쳤다.
전 세계의 열띤 반응에 구글도 곧바로 반응했으니, 전략이 어느 정도 통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구글은 왜 그동안 챗봇을 내놓지 않았을까.
● 구글이 챗봇을 먼저 내놓지 못한 이유
구글 내부에서도 챗봇을 내놓자는 의견이 계속 있었다. 2년 전, 구글 연구원인 대니얼 드 프레이타스와 노움 섀지어는 동료들과 회사에 챗봇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두 연구원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이들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대중에게 알릴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고 동료들에게 전했다.
이러한 배경에도 구글이 그동안 챗봇을 내놓지 않은 이유는 ‘잃을 게 많아서’다.
구글이 1년에 처리하는 검색어 수만 2조 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전 세계 사람들이 구글에 의존하고 있다. 사용자는 구글을 이용하면서 다양한 검색 결과를 기대하지만, 여기에는 구글의 검색 결과가 안전하고, 사실에 기반을 둘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있다.
그런데, 챗봇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100개의 질문 중 99개가 훌륭한 답변이더라도 1개의 오답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무슨 약을 먹어야 할까’ 같은 질문에 잘못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인종차별적인 답변이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주는 것도 고민거리다.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은 1위 사업자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빙’ 같은 대안이 있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2020년까지 구글에서 언어 모델을 책임졌던 고어래브 네메이드는 “구글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와 전 세계에서 AI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색과 챗봇은 서비스 개념부터 다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검색은 사업자가 ‘플랫폼(중계자 또는 관리자)’ 역할만 하면 되지만, 단일 답변을 직접 내놓는 챗봇은 다르다. 답변의 책임이 회사에 있다.
● 혁신가의 딜레마
더 큰 이유는 ‘광고’다. 사실, 챗GPT가 흔드는 것은 엄밀히 말해 검색이 아니라 검색 뒤에 숨은 5000억 달러(약 658조 원) 규모의 ‘온라인 광고 시장’이다.
온라인 광고는 오늘날 시가총액 1조2000억 달러(약 1580조 원)의 구글을 만들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2011년 이후 검색 부문에서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왔다. 지난해 매출 2828억 달러(약 373조 원)에서 검색·광고 비중이 89%로 절대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은 검색에서만 사용자 1인당 연 150달러(약 20만 원) 이상을 벌고 있다.
애플과 틱톡, 아마존 등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지만, 구글은 여전히 전 세계 ‘인터넷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챗GPT가 평온했던 검색 시장에 돌멩이를 던졌다.
똑똑한 챗GPT는 굉장한 속도로 단일 답변을 내놓는다. 사용자는 편리해지겠지만, 검색 사업자의 마음은 꽤 불편할 수 있다. 온라인 광고 수익은 고객이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클릭’하고 새로운 웹사이트가 등장하는 찰나의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챗GPT가 검색을 대신하는 순간, 사람들이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줄면서 구글의 온라인 광고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히 구글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광고 수익에 의존해왔던 수많은 플랫폼 서비스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구글이 챗봇 도입에 주저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비용’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챗봇이 답변 하나를 내놓는 데에는 2센트(약 26원)가 든다. 구글 검색보다 7배 많은 금액이다. 수익성은 낮고 비용은 높은 셈이다.
어찌 됐든 MS는 챗GPT로 검색 시장을 흔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빙의 검색에 챗GPT를 추가 기능으로 선보이면서 구글의 점유율을 뺏어오려는 것으로 보인다. MS가 검색 시장에서 점유율 1%를 뺏으면, 연 20억 달러(약 2조6400억 원)의 수익이 증가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서울대 AI연구원 객원연구원)는 “MS와 챗GPT는 도전자로서 기존 사업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을 하고 있다”면서 “오픈AI가 공들이고 있는 GPT4 버전이 나오면 다양한 산업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체면을 구긴 구글의 행보가 궁금하다. 이코노미스트는 “20년간 꾸준히 수익을 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포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혁신가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지난달 전했다. 혁신가의 딜레마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후발 주자의 기술에 시장 지배력을 뺏기는 경우를 뜻한다.
챗봇에는 여러 과제가 남아 있지만, MS의 챗GPT가 일단은 구글의 검색을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제는 구글이 답을 찾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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