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도매가 상한제론 한전 적자 해결 못해”[기고/박호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7일 03시 00분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모든 정책에는 법적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한다. 현재 논의 중인 SMP 상한제는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전력과 에너지 시장 생태계 발전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취지는 한전의 누적 적자 해소에 있다. 2022년 기준 약 33조 원을 기록한 한전의 적자 원인이 국내 발전사의 일방적인 공급가격 상승에 있다면 SMP 상한제가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적자 원인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훨씬 못 미치는 국내 소매 전기요금에 있기에 상한제 시행 근거를 찾기 힘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격 상한제 도입 국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에너지 가격 상한제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에 상한을 뒀다. 소매 전기요금이 단기간 폭등하면서 취해진 조치다. 한국은 국제시장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두세 배 폭등하는 사이 전기요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국 같은 도입 근거를 찾을 수 없다.

SMP 상한제는 현 정부가 표방한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력산업은 수요가 있는 곳에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기에 공급자 측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따라서 주요국들은 가격 시그널을 통해 수요자원(DR)을 최적화하는 등 첨단 시장 제도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스마트 팩토리,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산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소비가격 시그널을 규제하고 판매사와 발전사에 부담을 지우면 이 같은 기술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관련 스타트업들이 피어나다가 지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경험이 있다.

SMP 상한제는 탄소중립에도 역행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 가격 시그널을 통해 저탄소 구조로 시급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출권 비용을 반영하는 환경급전을 시행하는 상황에서 SMP 상한제를 발동하면 IPCC가 요구하는 소비행위 변화를 유발하기 힘들다.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시행된 SMP 상한제로 발전사 정산금이 약 2조 원 감소했다고 한다. 사업자 수익 감소는 신규 사업 투자를 위축시킨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트레이딩과 계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양방향 입찰시장, 전력 선도시장 등 전력시장 제도 설계와도 상충될 수 있다.

한전 적자 폭 해소는 SMP 상한제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 전력시장 특성상 유럽과 미국이 경험하는 요금 폭등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고려 없이 판매사와 공급사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만 취한다면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과거 발전공기업이 전기를 공급할 때와 다른 전력 생태계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민간 발전설비와 발전물량 비중이 각각 약 40%와 30%에 달한다. 과거 가격 규제 중심으로는 작동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전력 정책도 과거 익숙한 것과 헤어질 결심을 할 때가 되었다.

#전력도매가 상한제#한전 적자#smp 상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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