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동아시론/유정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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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적발자 중 재범 이상 44.5% 달해
단속 처벌로는 한계, 시동잠금장치 도입할 때
관련 법 통과시키고 세밀한 시행계획 세워야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최근 정부가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대검찰청 경찰청 관세청 교육부 합동으로 840명 규모의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며, 기획재정부는 마약 예방 및 대응 능력 강화 등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마련한다. 마약사범이 2014년 9984명에서 지난해 1만8395명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최근 마약을 비롯해 마약류 의약품까지 10대 청소년들 사이로 깊게 파고든 상황을 정부가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마약범죄가 늘어나면서 현재 단속이 어려운 약물운전 역시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각 작용으로 인해 과속, 난폭 운전 등을 하게 되나 도로 전체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현저히 저하돼서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약물운전은 집계 자체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음주운전과는 달리 현장에서 단속이 이뤄지기보다 마약 관련 범죄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약물운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시급한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정부의 완승을 기원하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역대 정부들이 반복적으로 치러온 ‘음주운전과의 전쟁’에서조차 연전연패했기 때문이다. 2019년 음주 적발 기준을 높이고 처벌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도입됐지만 효과가 없었다. 음주운전 재범 이상 비율은 최근 3년간 44.5%에 달해 법 시행 이전과 비슷했다. 단속과 처벌만으로 음주운전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여기에 더해 2021년 11월 헌법재판소가 반복된 음주운전에 대한 가중처벌을 위헌으로 판단했고, 지난해 5월에는 나머지 조항들까지도 위헌 선고를 받았다. 윤창호법은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됐다.

음주운전의 예방과 처벌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마약과 같은 강력한 습관성이 있는 음주운전은 패가망신시키는 법적 제재가 아닌 운전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음주운전자 중 알코올 사용 장애 질환자가 72.7%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운전 자체를 물리적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만이 해결책인 이유다. 시동을 걸 때마다 운전자가 직접 음주 여부를 측정해서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 이상이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서 1986년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운영 중인 선진국 통계를 보면 음주운전 재범률을 최대 90% 이상 줄여 음주운전 사고 예방에 확실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나라마다 설치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이상 적발된 운전자에 대해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국민 약 95%가 음주운전 위반자에 대한 차량 시동잠금장치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어,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국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음주운전 전과자에게 의무 설치토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18대 국회부터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며 15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끔찍한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때와 전혀 다른 정치권의 일상적 무관심이 걸림돌인 셈이다. 음주운전 전과자를 대상으로 설치를 의무화하는 데 실질적인 난관은 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의 가격은 200만∼30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동승자가 대신 음주 측정을 하는 등의 ‘꼼수’ 방지용 촬영 기능을 추가하고, 유지보수비까지 합하면 비용은 더 높아진다. 그리고 개인 소유 차량에 장착하므로 기본권 침해 우려가 높고, 향후 이 많은 장치의 관리운영 주체도 결정해야 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제도 인프라 구축은 국가가 담당하지만, 장치에 소요되는 비용은 운전자 부담이 원칙이다. 물론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국가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갖가지 대책이 나왔고 처벌도 강화됐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로 일평균 85명의 국민이 생명을 잃거나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음주운전 행위는 중독성이라는, 제어가 어려운 특성이 있어 운전자가 인지를 못 하더라도 시스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음주운전 사고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하면 잠금장치 제도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의무 부과 대상 범위, 부과 정도, 의무 미이행 시 제재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은 국회가 하루빨리 나서면 될 일이다. 음주운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음주운전과의 전쟁#음주운전의 예방#처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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