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고운식물원 이주호 대표
11만평에 8800여종 수목-꽃 서식… 사립식물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
2003년 개원 후 매년 10만명 방문… 국가나 지자체가 체계적 관리 기대
“꽃과 나무, 그리고 풀이 좋아 40년 동안 식물원을 가꿔 왔습니다. 이제 모든 이의 품에 안겨주고 싶습니다.”
충남 청양에 있는 고운식물원에서 만난 이주호 대표(78)는 “평생 가꿔 온 고운식물원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넘겨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에 위치한 고운식물원은 37ha(약 11만 평) 규모로 사립식물원으로는 국내 최대다. 기존 자연림 외에도 8800여 종에 달하는 수목과 꽃이 서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식물원에 인생을 모두 털어 넣었다. 30대 후반인 1980년대 부지를 매입한 뒤 1990년 부지 조성을 시작해 마침내 2003년 개원했다. 올해로 조성 시작 33년, 개원 20년을 맞았다.
현재는 연간 10만 명이 찾고 있다. 오늘의 고운식물원은 이 대표의 ‘식물 사랑’이 바탕이 됐다.
그는 1971년 ‘조경’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절에 고운조경이란 회사를 설립했다. 1980년대 아파트 건립 붐이 일면서 조경산업은 탄탄대로를 달렸고, 고운조경은 전국 조경업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그는 기업가로서의 모든 것은 내려놓고 자신이 구상한 식물원을 만들기 위해 전국 산야를 누볐다. 그런 끝에 낯선 땅 청양에서 꿈에도 그리던 식물원 최적지를 발견했다.
“청정한 청양에서 아무런 손때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어머니 배 속 같은 포근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 식물원을 조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땅을 파보니 돌산이었다. 돌만 캐내는 데에만 꼬박 17개월을 쏟았다.
그렇게 조성한 식물원에서는 연중 7400여 종의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이 가운데 3분의 2는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 식물원을 형형색색으로 수놓는다.
철마다 제철 꽃이 흐드러지고 720㎡의 온실에서는 황새풀, 섬시호, 구엽초, 동백, 수국, 허브 식물 그리고 갖가지 희귀식물이나 열대식물이 자란다. 사계절 관광지인 셈이다.
가끔 꽃 전시회도 열린다. 최근에는 ‘고운 새우난초, 광릉요강꽃 전시회’가 고객들을 맞았다. 광릉요강꽃은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한 희귀종이다.
이 대표는 조경이나 식물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식물원을 무료로 개방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공익적 활동 등으로 국가에서 많은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운식물원의 가장 큰 차별점은 자연이 조율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된 여타 식물원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계절과 자연환경에 따라 꽃이 피고 지고,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룬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보다 식물원을 운영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자연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국에 국공립식물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돼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제는 수많은 꽃과 식물을 관리하는 직원 20여 명의 인건비 지급도 어려운 형편이다.
5월 초 찾은 고운식물원에는 수국이 만개했다. 철쭉 축제도 곧 시작될 예정이란다. 식물원 흙길을 따라 천천히 걷던 그는 고운식물원의 운명에 대한 얘기를 털어놨다. “이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넘겨 좀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생 모든 것을 식물원에 쏟아 넣은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결정을 한 듯했다.
“더 많은 사람이 고운식물원을 사랑하게 된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저와 함께 평생 이곳을 가꿔온 직원 20여 명은 그대로 이곳에 남아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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