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좋아도 직장은 힘든 한국… 새로운 조직문화 필요한 때[광화문에서/박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9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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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얼마 전 40대 대기업 팀장이 새벽까지 일하다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전언과 새벽 3시 출입기록 등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국인의 행복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가깝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직장 문화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은 눈여겨볼 만한 지표다. 객관적으로는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에서 여전히 문화 지체 현상이 가장 심한 분야 중 하나가 의외로 직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분석을 제공하는 바이브컴퍼니의 썸트렌드에서 최근 1년간(28일 기준) ‘일’이란 단어에 대한 감정어 분석을 해봤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 게시글에 언급된 일이란 단어를 분석하자 긍정(53%) 감정이 가장 높았고 연관어로 ‘좋다’ ‘행복하다’ ‘잘하다’ 등이 나왔다. 하지만 ‘직장’을 넣어보자 지배적 감정이 부정(56%) 감정으로 변했다. 주요 연관어도 ‘괴롭히다’ ‘스트레스’ ‘힘들다’가 주를 이뤘다. 일은 좋아도, 직장은 싫고 힘들다는 것이다.

직장 문화의 문제는 기업의 규모나 유명도와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최근 유독 대기업이나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과로, 스트레스,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문제가 됐다. 상대적으로 인사나 복지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 대기업조차 일부 구성원들의 인식이나 일하는 방식은 제도와의 부조화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10년간 일한 외국계 임원이 쓴 책 ‘한국인은 미쳤다’는 외부자적 시선에서 강박적 과로 문화, 지나친 성과주의, 가차 없는 감시와 평가 등 한국의 여러 직장 문제를 지적한다. 출간된 지 꽤 된 책인 데다 Z세대 유입 등으로 적어도 외형적으론 조직이 급속히 변했지만, 어떤 지적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외형만 선진화된 까닭에 조직 내 갈등이 오히려 심해진 측면도 있다. 수평적이지 않은 수평문화, 자율적이거나 유연하지 않은 자율·유연근무 같은 것들은 괴리감과 모순을 심화시킨다.

또 다른 한 축이 이런 갈등에서 파생된 직장 내 괴롭힘이다. 소셜 분석에서 직장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연관어가 ‘괴롭히다’였다.

최근 한 잡포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유형으로 가장 많은 것은 따돌림 및 차별(56.3%), 모욕과 명예훼손 발언(50.8%), 업무 외 강요(37%) 등이었다. 한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후 노골적 폭언 등은 줄었지만, 업무나 식사 배제 등 교묘한 정서적 학대는 늘었다.

올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임금근로자들의 월간 총근로 시간은 164.2시간이었다. 주중 활동 시간의 절반에 달하는 이 시간이 만족스러워야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직장이 힘든 건 개인적 불행이자 조직과 사회적 차원의 손실이다.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는 한편 ‘잘살지만 불행한 한국인’ 미스터리를 해결할 한 축으로 직장 문화를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됐다.

#새로운 조직문화#직장#잘살지만 불행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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