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위탁 수하물 보안 검색 과부하로 대규모 지연이 발생한 겁니다. 공항은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면 이후 출발편이 잇따라 지연됩니다. 이날 적게는 수십 분에서 길게는 2시간까지 운항 지연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공항의 악몽은 하루 만에 종료가 됩니다. 25일부터는 공항이 문제없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왜? 5월 24일에만 보안 검색 과부하 문제가 발생한 걸까요? 전날인 23일 뿐 아니라 그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음날인 25일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공항은 평온했죠. 도대체 5월 24일 김포공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스프레이’가 공항을 마비시켰다?
대규모 지연의 표면적 이유는 위탁수하물 보안 검사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일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맡긴 위탁 수하물에서 보안에 어긋나는 물건이 발견된 것이죠. 그중 하나가 ‘스프레이’였습니다.
그런데 스프레이는 규정대로라면 위탁 수하물로 보낼 수 있는 품목입니다. 그동안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런데 이날 보안당국에서 강도 높은 보안 검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공식적인 문서로 지시를 내린 건 아니라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갑자기 강도 높은 보안 지시가 내려왔다는 말이 돌고 있었습니다.
다만, 스프레이 중에서도 인화성 물질이 있으면 위탁 수하물로 보낼 수 없습니다. 발화성·인화성 물질이 함유된 스프레이는 반입이 안 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죠. 에어로졸, 인화성 살충 스프레이 등은 반입이 안 되고, 헤어스프레이도 종류와 성분에 따라서는 반입이 안 되는 상품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날 문제가 있는 액체류가 일부 발견되면서, 액체류 전수 조사를 보안 당국이 지시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 공항 발권 창구 근처 안내판에는 “현재 보안 검색 강화 조치로 인해 액체류를 수하물로 맡기실 수 없습니다. 맡기시는 짐에서 액체류를 제거하신 후 기내에 가지고 탑승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뜨기도 했죠. 김포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액체는 반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액체를 반입하지 말라고 한 걸 보면, 액체류 검사와 관련해서 현장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준법 투쟁’과 ‘개봉검사’
상황을 종합해 보겠습니다. △이날 일부 위탁수하물에서 반입이 안 되는 물품들이 발견됐다. △보안 당국으로부터 보안 및 검색을 강화하라는 취지의 말이 나왔다. △위탁수하물을 더 꼼꼼하게 봐야하는 상황이 됐다 정도입니다. 상황만 봐서는 전혀 문제가 되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현장’이라는 곳은 원칙만 고수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위탁수하물은 보안 검색대 (X-RAY)를 거치면서 1차 검사를 하고, 의심되는 물건이 있으면 직접 가방을 열어서 검사 합니다. 이를 ‘개봉 검사’라 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모든 짐을 개봉 검사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공항이 마비됩니다. 위탁수하물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도 한정적이고 인력도 한정적입니다. 모든 짐을 일일이 열어 본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보안 검색대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안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보안 검사 지시가 내려왔고, 그래서 보안요원들은 개봉 검사를 강도 높게 한 겁니다. 그런데 개봉 검사를 제대로 하다 보니 공항 운영에 문제가 생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한 보안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축적된 검색 노하우가 있다. 보안에 위배가 안 돼서 그동안 문제 삼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데 그냥 원리 원칙대로 다 하면 공항은 마비된다. 현장의 특수성이 있고, 그래서 안전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원리 원칙을 따지면 답이 안 나온다”라고 말했습니다.
공항 운영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보안 당국은 원리 원칙을 강조한 모양입니다. 최근 크고 작은 보안 문제가 생기다 보니 철저한 검색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보안 업무 담당자들도 ‘준법(법을 지킨다)’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열심히 개봉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보안 당국에서 이른바 ‘FM(철저하게 원리 원칙을 지키며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 대로 처리하라고 하니, 보안 요원들도 ‘FM‘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한 겁니다. 모든 짐에 대해 원리 원칙대로 개봉검사를 한 거죠. 이날 현장에서 “보안 요원들이 ’준법 투쟁‘을 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누가 봐도 지금 공항이 마비됐는데, 누구도 “보안 검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연성을 발휘하라”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기 때문이죠.
한 공항 근무자는 “보안 당국에 전수 검사 철회를 요청했지만,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왔다고 하더라. 일은 벌어졌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기 싫어서 원칙을 고수하다가 이 사달이 났다”라고 말했습니다.
●열약한 보안업계 처우
그렇다면 왜 보안 요원들은 이날 준법 투쟁이라 불릴 만큼 강도 높은 보안검사를 한 걸까요? 보안 업계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안 사고가 나면 대게 ‘책임자 색출’에 집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고의 원인을 자세히 따지기보다는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고 들면서 ‘책임자를 처벌하라’로 귀결이 되곤 하죠. 결국 보안 사고의 화살은 보안 요원들에게 날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할 경우엔 징계와 법적 처벌도 받습니다. 결국 보안 요원들로서도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안 당국의 요청에 따라 강도 높은 보안 검사를 했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보안 업계 인력도 부족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기간(코로나19)에 보안 요원들이 공항을 많이 떠납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여객 수요가 회복되고 있음에도 보안 요원들은 채워지지 않고 있지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의 5월 초 기준 보안 검색 요원은 정원인 1890명에 360여 명 부족한 1520여 명입니다. 정원보다 약 20% 적은 인원이 있다는 얘기죠. 김포국제공항의 보안 인력은 4월 기준 283명으로 정원인 306명에 23명(7.5%) 부족합니다. 2019년까지는 이 직무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보안 요원들은 말 그대로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황입니다. 인력을 채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안 요원을 뽑는다고 채용 공지를 올려도 사람들이 오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채용돼도 채용 절차를 밟다가 그만두거나, 합격을 해도 단기간에 퇴사를 하는 비율도 상당합니다. 구인난이 계속되는 배경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보안 검색 요원이 되려면 2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 기간에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게 뽑은 지원자의 20% 정도가 경제적 이유로 중도 포기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급여도 7년 차까지는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낮은 처우에 비해 업무 강도는 높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법적인 책임을 물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안 업무가 기피 직군이 된 겁니다. 현장 보안 인력이 모자라니 현장 근무자들에게 업무가 더 몰리고, 이 때문에 이직과 퇴사가 많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올해 1분기(1∼3월)에만 인천공항에서 50명이 퇴사합니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하루 13∼15시간 동안 공항에 있어야 하는 등 업무 강도가 높지만, 인력 부족으로 휴식 시간이 많지 않다”며 “보안이 중요하다고만 말만 하지, 정작 보안 요원들에 대한 대우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우는 낮고, 근무 강도는 높아서 불만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검사를 똑바로 하라는 강도 높은 보안 검색 지시까지 내려오다 보니 ‘준법 투쟁’이라는 형태로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보안 요원들이라고 보안 사고를 내고 싶겠느냐? 현장 상황을 좀 고려해야지, 그냥 굴리고 쪼고, 책임만 전가하면 누가 일하려 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공항 보안 요원에게 책임은 많이 부가돼 있지만, 공권력에 준하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위에서 말한 여러 문제가 사기 저하와 업무 기피로 이어질 경우 사고의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항 보안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
그러면 보안 검사를 제대로 하지 말라는 말이냐. 보안 검사를 그동안 제대로 안 한 것이냐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보안 검사는 제대로 해야지요. 그런데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원리 원칙대로 보안 검색을 하면, 공항 운영에 큰 차질이 발생합니다. 공항 효율성과 보안을 모두 잡으려면, 보안 검색대를 늘리고 보안 요원 처우를 개선해서 인력을 대폭 늘리면 됩니다. 보안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되는 일이죠.
하지만, 이것도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엔 예산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공항 인프라 관련 사업 추진은 한국공항공사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한국공항공사도 공기업이고 법에 따라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자회사로 운영되는 보안 업체에 예산을 주는 것도 법적인 근거에 따라, 용역 계약에 관한 원칙에 맞춰서 줄 수밖에 없습니다.
공항 이용료 등을 좀 더 올려서 수익을 올리고, 이를 보안 인프라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항 이용료를 올리는 건 한국공항공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위 기관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누구 하나만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공항 마비라는 문제가 생기자 한국공항공사 측은 다양한 해결책을 내놨습니다.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서 수학 여행객들에게 반입 금지 물품에 대한 교육을 확실히 해 달라고 요청했죠. 또한 항공사들에는 위탁수하물을 맡기는 승객에게 보안 위반 물품 규정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프레이나 액체를 위탁 수하물로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승객들의 편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요? 5월 24일 김포공항의 대혼란은 보안 현장에 존재하고 있던 보이지 않은 갈등과 그동안 쌓여 있던 구조적인 문제와 불만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공항의 보안 체계와 보안 인력 문제, 보안 현장의 현실, 보안 요원들의 지위와 역할, 그와 관련된 법 등을 모두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누구나 보안과 안보가 중요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보안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였을까요?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려 얼마나 적극적인 논의를 했을까요? 국토교통부도, 보안 당국도, 항공업계도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지요. 그사이 사고가 터진다면, 우리는 또 책임자를 찾아 나서겠지요. 우리나라의 항공 보안은 어느 수준일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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