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과학 유튜버로 유명세를 타며 최근에는 방송 출연도 자주 하는 그가 인터뷰를 시작하며 꺼낸 말이다. 여기저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해야 유튜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를 당황시킨 말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이어가며 그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진정성을 갖고 과학이라는 문화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제가 주목을 받다 보면 궤도라는 사람에 대한 콘텐츠만 소비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언젠가 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다면 제가 전하는 과학 관련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사라질 수 있겠죠. 그래서 저라는 사람보다는 제가 만드는 콘텐츠에 사람들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되도록 개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궤도라는 크리에이터 이면의 모습이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터. 그래서 그가 슬며시 들려준 인간 ‘궤도’의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본다.
과학자가 아닌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된 이유
궤도의 직업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직업이다.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방과후 교실, 박물관, 강연, 언론매체 등에서 학생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과학을 쉽게 이해시키고 알리기 위해 설명하고 기고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직업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스포츠 중계의 해설가와 비슷하다. 궤도는 과학자와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운동선수와 해설가로 표현한다. 축구를 예로 들면, 축구 경기를 보는 것 자체도 재미있지만 해설가의 해설이 더해지면 선수가 한 번의 슛을 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왜 저 상황에서 저런 플레이가 나왔는지 알 수 있어서 더 즐겁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실생활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과학 지식들을 삶과 연결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궤도는 “과학자들의 우수한 성과를 재미있게 해설해서 대중이 과학이라는 경기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며 설명한다.
그렇다고 궤도가 처음부터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도 어렸을 때는 과학자를 꿈꿨다. 특히 소년 궤도는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그맘때쯤 ‘푸른 달’이 나오는 꿈을 자주 꿨는데 꿈에 나온 장면을 현실에서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천문학자를 꿈꾸게 됐다. 그는 “어릴 때는 천체물리학으로 노벨상을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과학을 교과목으로 배우면서 과학자에 대한 꿈도 커졌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스스로 천재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고.
“당시 과학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제대로 답변을 해주시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학교 진도를 빼는데 방해가 돼서 그러셨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선생님이 몰라서 답변을 안 해준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선생님도 답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몇 번 찾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난 천재가 아닐까?’, ‘난 과학적 난제를 풀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라는 망상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도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 입학했지만 이후 학계에서 수많은 천재들을 만나며 ‘과연 내가 과학자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일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궤도는 당시를 회상하며 “과학의 비밀을 풀어낼 사람이 ‘나’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과학자의 꿈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 연구소에 들어갔지만 그가 마주한 과학자의 현실은 어린 시절 그가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진짜’ 천재들은 대부분 낮은 처우와 과도한 업무에 고통받고 있었다*. 인력도 부족해 잠을 줄여가며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을 사랑한 청년 궤도에게도 이 같은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는 과학자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연구를 할 수 있을 방법을 고민했다.
*실제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공운법(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다 보니 연봉이나 인원 등에 대한 제약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우수한 과학자들이 입사를 해도 낮은 연봉과 높은 업무 강도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 총액은 30조원 수준. 이는 미국 NASA의 1년 예산보다도 적다. 궤도는 그 원인이 근본적으로는 대중에게 과학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보았다. 그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리지 못하니 대중은 과학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며 “대중이 과학기술에 무관심하니 정치권 역시 과학기술 예산 증액에 관심이 없고 그 결과 현장의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희생으로 성과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 해답이 ‘과학의 대중화’에 있다고 봤다. 그는 “현장의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린다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대중들의 관심이 쏠려서 정부가 예산을 늘리고 그 혜택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고 생각했다”며 “과학에 대한 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꿔 학계와 연구계에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찾은 해답이 바로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설명했다.
과학도 밈으로 만들어 버린 궤도만의 노하우
그렇다면 과학자에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변신한 그가 과학적 상식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찰떡 같은 비유’다. 실제 궤도를 유명 유튜버로 만든 힘은 그의 비유력(?)에서 나온다. 대표적 예가 우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면서 치킨에 빗대서 설명한 것. 그는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설명하면서 치킨을 예로 들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우주 형성의 모든 재료를 기본입자라 하고 이들과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형태를 표준 모형이라고 하는데 이를 치킨에 빗대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모든 만물이 흙, 불, 공기, 물로만 이뤄져 있다는 ‘4원소설(設)’을 주장했지만, 이들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에는 전자가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며, 업 쿼크와 다운 쿼크로 쪼개진다. 중성자보다 더 작아 중성미자로 불리는 녀석도 있는데, 질량이 너무 작아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 그리고 중성미자 여기까지가 현대판 4원소설이다.
만약 이 우주가 오직 4종류의 치킨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우리는 프라이드, 양념, 간장, 마늘 치킨을 찾아낸 것이다. 이걸 1세대 기본입자라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세대는 총 3가지다. 2세대와 3세대 역시 1세대처럼 4가지 기본입자로 구성됐는데, 각 운동량이나 스핀은 같지만 질량이 다르다. 이제 단순한 4치킨 시대는 끝나고 핫양념, 볼케이노, 숯불양념, 강정, 왕갈비, 불갈비, 베이크, 가마솥 치킨까지 더한 12치킨 시대가 온 것이다. 이 12종류의 기본입자를 우리는 페르미온이라고 부른다.”
-『주간 동아』 ‘궤도 밖의 과학-29’ 中
그는 평소 TV를 볼 때나 영화를 볼 때도 이를 어떻게 과학 지식에 비유를 써먹을지 고민할 정도로 비유에 진심이다.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또한 실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쉽고 재밌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손에 물이 묻은 상태로 콘센트를 만지다가 감전되면 탈출할 수 없는 이유를 “우리 몸이 바이오 로봇이라 몸에도 전기가 흐르는데 콘센트에 흐르는 전류가 우리 뇌가 보내는 전류보다 강하다. 그래서 마치 태풍이 부는 날 선풍기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전기가 우리 몸에 흘러 들어오면 뇌의 명령이 무시되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거나 ”가위눌림은 뇌는 잠들었는데 몸만 깬 몽유병과 반대로 몸은 잠들어 있는데 뇌만 깬 상태”라고 설명해 이해도를 높이는 식이다.
그는 “어렵고 낯선 용어들을 설명하는데 무턱대고 설명부터 하면 흥미를 끌기 어렵다”면서 “치킨이나 아이돌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와 과학적 지식을 잘 연결하는 것이 대중이 계속 듣고 싶도록 만드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과학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고’
80만 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지만 그의 목표가 모든 사람들이 전문가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목표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과학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여기서 과학적 사고란 문제를 정의하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는 사고를 뜻한다. 그는 “대중이 전문가 수준의 과학 지식을 보유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대중이 많아질수록 매 순간 상식적인 사회적 선택을 통해 합리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
그가 방송에서 입버릇처럼 “먼저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다 못해 “사과가 맛있다”라는 말이 있으면 ‘맛있다’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이라는 것. 그가 하도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다 보니 최근에는 구독자들이 이를 밈으로 만들어 따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 사고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과학 콘텐츠를 많이 접해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사고해 왔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단지 말투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밈으로 따라하는 것 역시 자연스레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지는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과학에는 실패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패라는 것은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한 과학에서 실패는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예를 들어 누리호 1차 발사 과정에서 발사체가 목표 궤도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언론에서는 이를 ‘실패’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의 시선에서 이는 실패가 아니에요. 다양한 가능성 중 한 가지를 시도했고 그 상황에서 문제점을 확인한 것일 뿐이죠. 만약 우리가 누리호 1차 발사를 실패로 보고 더 이상의 시도를 멈췄다면 진짜 실패했을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목표라는 궤도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과며들게’ 하겠다며 말했다. 과학이 특이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대다수가 즐기는 문화가 되는 날까지 그의 ‘궤소리’는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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