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리튬이 대박? 한번 따져봅시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2일 08시 00분


‘하얀 석유’ 또는 ‘백색 황금’.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기차 시장 확대로 리튬 수요가 2040년까지 무려 40배로 증가할 거라고 하죠(국제에너지기구). 리튬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 경쟁도 아주 치열합니다.

그런데 ‘리튬 수요 급증=리튬 가격 급등’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냐고요? 글쎄요. 가격을 결정하는 건 수요만이 아니죠. 공급이 매우 중요한데요. 오늘은 공급 측면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리튬 산업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호주 리튬 광산에서 채굴 뒤 처리된 리튬이 쌓여있다. 호주 기업인 필바라미네랄 리튬광산의 모습이다. 필바라미네랄 홈페이지
호주 리튬 광산에서 채굴 뒤 처리된 리튬이 쌓여있다. 호주 기업인 필바라미네랄 리튬광산의 모습이다. 필바라미네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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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삼각지와 자원 민족주의
에너지 전환은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석유 시대, 중동의 부상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지금은? 전기차용 배터리의 원료로 쓰이는 금속들이 단연 주인공입니다. 니켈 덕분에 주목받게 된 인도네시아의 ‘자원 갑질’ 이야기는 이미 전해드렸는데요(딥다이브 ‘인도네시아 경제’ 편).

리튬은 니켈이나 코발트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중요한 금속이죠. 정말 모든 리튬이온전지(심지어 전고체 배터리까지!)에 다 쓰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선 리튬 없이는 전기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

리튬은 전 세계에서 채굴되지만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호주, 칠레, 중국 순입니다. 하지만 아직 광산이 개발되지 않은 곳까지 합쳐 탐사된 매장량(2023년 기준 총 9800만t)으로 따지면 순위가 좀 달라지는데요. 볼리비아(2100만t)-아르헨티나(2000만t)-미국(1200만t)-칠레(1100만t) 순입니다.

딱 봐도 중남미 비중이 상당히 크죠. 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 3국을 ‘리튬 삼각지’라고 부를 정도인데요. 전 세계 리튬 중 53%가 여기 매장돼있습니다.

칠레 아타카마 호수에서 SQM이 리튬을 생산하는 모습. 호숫물을 퍼내 증발시켜서 리튬을 추출한다. SQM 홈페이지
칠레 아타카마 호수에서 SQM이 리튬을 생산하는 모습. 호숫물을 퍼내 증발시켜서 리튬을 추출한다. SQM 홈페이지
지난 4월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리튬 국유화’를 선언하며 전 세계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현재 칠레의 광활한 아타카마 염호(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생산하는 권리는 미국 기업 앨버말(Albemale)과 칠레 화학기업 SQM(소시에다드 키미카 이 미네라)이 갖고 있는데요. 보리치 대통령이 “향후 리튬은 국가 통제가 있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으로만 생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들 기업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계약기간이 아직 한참 남아있긴 하지만(앨버말 2043년, SQM 2030년 계약 만료)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거죠.

앞서 볼리비아는 2008년에 이미 우유니 소금호수의 리튬 생산 산업을 국유화했죠. 지금은 볼리비아 국영기업 YLB(야시미엔토스 데 리티노 볼리비아노스)가 자국의 리튬산업을 통제하고 있는데요.

이제 볼리비아에 이어 칠레까지 리튬 국유화라니. 결국 ‘자원 국가주의’가 본격화된 걸까요. 전 세계가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관심은 삼각지 중 남은 하나, 아르헨티나에 쏠렸는데요.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상황이 좀 달라 보입니다. 일단 이 나라는 헌법에 따라 리튬 소유권이 중앙 정부가 아닌 주정부에 있는데요. 지난 2월 24개 주 중 한 곳(라리오하주)이 민간 기업의 리튬 채굴권을 중단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23개 주정부는 리튬 산업에 대한 해외기업 투자 유치에 여전히 적극 나서고 있죠.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다 아빌라 광업부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리튬에 대한 투자는 멈춘 적이 없어요. 이는 우리가 민간 투자에 개방적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는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해외기업 투자 웰컴’을 외치고 있는데요. 아르헨티나 경제가 워낙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아르헨티나는 물가상승률이 연 115%에 달하죠. 당장 일자리와 돈이 급한 아르헨티나 주정부로선 자기네 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채굴해 가겠다는 해외 기업이 반가운 존재입니다. 리튬을 수출할 때 기업이 내야 하는 로열티도 매우 낮은 3%로 잡았죠. 참고로 칠레의 경우,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로열티 비율이 최고 40%에 달합니다(리튬 가격이 높아지면 비율도 오르는 구조).

그 결과 아르헨티나에서는 리튬 생산 프로젝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발표된 프로젝트만 38개에 달하죠. 그 결과 5년 뒤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량은 지금의 6배로 증가할 거라는데요. 2027년이면 리튬 생산량에서 칠레를 추월할 전망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살리나스 그란데스의 소금 평야. 게티이미지
아르헨티나의 살리나스 그란데스의 소금 평야. 게티이미지
리튬 삼각지 3국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건 배터리 생태계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리튬 생산국 카르텔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 민족주의로 리튬 공급이 타이트해지면서 리튬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조만간 발생하진 않을 거란 뜻이죠.

세계은행의 존 배프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원자재 카르텔엔 세가지 특징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잘 정의된 목표를 공유하는, 소수의 생산자가 있다는 점인데요. 이 기준에서 봤을 땐 리튬 같은 배터리 금속은 카르텔 형성이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해 몇몇 국가가 모일 수 있지만 그것은 실패할 겁니다. 그룹의 외부에서 더 많은 생산자들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리튬 추출? 제 2의 셰일 혁명일까
석유시대의 질서를 뒤흔든 건 미국의 ‘셰일 혁명’이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이 발전된 추출기술을 이용해 셰일가스 생산에 나서면서 미국이 에너지 전쟁의 패권을 쥐게 된 건데요. 리튬 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접 리튬 추출’ 기술 때문입니다.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설명하기 전에 리튬을 어떻게 생산하는지부터 알아볼까요. 지금은 크게 두 가지 방법입니다. 하나는 호수 지하에 있는 소금물을 퍼낸 뒤 물을 증발시켜 얻어내는 겁니다. 염전에서 천일염을 얻듯이 말이죠.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처럼 광활한 소금호수가 있는 나라에서 쓰는 방법이고요. 다른 하나는 땅에서 고체 형태의 리튬 광석을 캐내는 겁니다. 호주나 중국에 이런 리튬 광산들이 많죠.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인 호주에 있는 리튬 광산의 모습. 리튬 암석을 채굴해 로스팅하는 과정에선 석탄 화력이 쓰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필바라미네랄 홈페이지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인 호주에 있는 리튬 광산의 모습. 리튬 암석을 채굴해 로스팅하는 과정에선 석탄 화력이 쓰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필바라미네랄 홈페이지
그런데 두 방법 모두 환경 측면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물을 증발시켜 얻는 염수 리튬의 가장 큰 문제는 호숫물이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탄산리튬 1만t을 얻기 위해 200만t의 물을 증발시킨다고 하죠. 그 물로 생활하던 지역 주민들에겐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 “리튬은 오늘을 위한 빵이고, 내일의 굶주림”이라는 아르헨티나 소금호수 지역 주민의 말이 과장이 아닌 거죠.

광산에서 캐내는 암석 리튬은 생산과정 너무 많은 탄소를 배출해서 문제입니다. 주로 석탄 화력을 이용하기 때문인데요. 탄산리튬 1t을 만드는데 약 9.6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군요. 소금호수를 증발시키는 방법과 비교하면 2.5배에 달하죠.

그래서 새로운 ‘직접 리튬 추출(DLE, Direct Lithium Extraction) 기술’이 주목 받습니다. 소금물에서 리튬을 얻되, 물을 증발시키지 않는 방식입니다. 호수에서 소금물을 퍼내서 탱크를 거치게 하면, 탱크 안 세라믹 구슬(이온 교환 물질)이 리튬을 흡수하고 나머지 물은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죠.

기존 방식으론 막대한 양의 소금물을 공기 중으로 자연 증발시키느라 리튬을 추출하는데 12~18개월이나 걸렸는데요.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이용하면 2시간 만에 가능해집니다. 효율성도 높아서 같은 양의 소금물로 지금보다 2배의 리튬을 얻을 수 있다는데요. 상용화된다면 리튬 공급량이 획기적으로 빠르게 늘어날 수 있는 겁니다.

미국 스타트업 라일락솔루션은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이용해 2024년부터 아르헨티나 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현재는 파일럿 단계로, 기술의 효율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라일락솔루션 홈페이지
미국 스타트업 라일락솔루션은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이용해 2024년부터 아르헨티나 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현재는 파일럿 단계로, 기술의 효율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라일락솔루션 홈페이지
물론 아직 상용화된 기술은 아닙니다.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죠.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투자는 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기업이 여러 곳인데요. 리오틴토(호주 광산업체), BMW, GM 같은 기업은 물론, 빌 게이츠 소유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 같은 투자사까지 이들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그 중 가장 앞서가고 있는 건 미국 스타트업 ‘라일락 솔루션’의 아르헨티나 카치(Kachi) 프로젝트인데요. 내년 상업 생산을 시작해서 2025년부터는 연간 5만t의 탄산리튬을 생산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만약 계획대로 성공한다면(리튬 추출율도 예상만큼 높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될 텐데요. 아직은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엔 좀 이르긴 합니다. 참고로 지난해에 라일락 솔루션의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이 실제로는 형편없다는 공매도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리튬 생산량이 계획대로 늘어난다면
정리하자면 리튬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는 건 맞지만, 공급 측면에선 자원 민족주의와 생산기술 발전이란 변수가 있어서 중장기 리튬 가격 예측은 쉽지 않은데요. 그럼 멀리 말고 당장 1~2년 뒤는 어떨까요.

리튬 기업의 생산능력 증설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이뤄진다면 2025~2027년엔 리튬 공급량이 수요를 초과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료: 삼성증권
리튬 기업의 생산능력 증설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이뤄진다면 2025~2027년엔 리튬 공급량이 수요를 초과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료: 삼성증권
지난 6월 삼성증권이 낸 보고서를 참고할 만한데요. 글로벌 리튬업체들이 발표한 계획 대로라면 내년과 내후년엔 리튬 생산량이 꽤 크게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 결과 2025년이면 리튬 수요보다 리튬 공급이 더 많아질 거라는데요. 리튬 공급과잉 현상이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리튬 가격은 오르긴커녕 떨어질 일만 남은 걸까요? 글쎄요.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설 이후 품질 테스트 기간이 6개월~1년 정도 걸리는 데다, 증설 계획이 지연되는 경우들도 과거에 있었다”면서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만약 리튬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면 기업들이 굳이 설비 증설을 서두르지 않게 될 수도 있거든요. 참고로 배터리용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해 11월 t당 60만 위안까지 치솟아서 2021년 초와 비교하면 10배나 폭등했는데요. 올해 들어서는 급락해 현재 26만 위안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By. 딥다이브

리튬 가격은 리튬 생산업체뿐 아니라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실적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지난해 워낙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던 터라, 올해 가격 급락 뒤 전망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는데요. 역시나 변수가 많아서 예측이 쉽진 않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칠레의 리튬 국유화 선언으로 자원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죠. 하지만 리튬 매장량 세계 2위인 아르헨티나는 경제난으로 인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여전히 적극적입니다. 배터리 금속을 둘러싼 카르텔 형성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리튬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직접 리튬 추출 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집니다. 기존 방식보다 더 친환경적이란 장점도 있는데요. 다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리튬 수요 급증을 예상한 기업들이 빠르게 리튬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계획대로 증설을 한다면 2025년엔 리튬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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