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아무리 잘해도 돈이 줄줄 샙니다. 곳곳에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죠. 어느 가난한 나라 이야기냐고요? 월마트(Walmart)와 타깃(Target), 홈디포(Home Depot) 같은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의 하소연입니다.
기업의 엄살 아니냐고요? 끽해야 비누 몇 개, 옷 한두 벌 슬쩍하는 좀도둑일 거라고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직적으로 뻔뻔하게 매대를 왕창 쓸어가는 절도범들이 출몰하고 있죠. 오죽하면 각 주정부가 소매절도 근절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종합 대책을 내놓고, 법률 개정에 나섰을 정도라는데요. 오늘은 미국 유통업계의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소매 절도 문제를 딥다이브 하겠습니다.
미국 스포츠용품 판매업체 딕스스포팅굿즈 주가가 22일 무려 24.15% 급락했습니다. 이날 발표한 2분기 실적이 너무나 부진했기 때문인데요. 매출은 2분기에 3.6% 증가했지만 이익이 23%나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실적 감소(올해 매출총이익 약 0.5% 감소)를 언급해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죠.
그런데 실적 부진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이유였습니다. 로렌 호바트 CEO는 성명을 통해 “2분기 수익성은 재고 손실(inventory shrink)의 영향으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요. 재고손실이란 기록 상으로는 있어야 할 재고가 사라졌단 뜻이죠. 그럼 그 이유는?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사기, 손상, 회계 오류 등)가 있지만 딕스스포팅굿즈가 뜻하는 건 이겁니다. 도둑질.
사실 물건을 대거 도둑 맞고 있단 사실을 유통기업이 직접 나서서 밝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도둑 맞았는지 파악 자체가 쉽지 않기도 하고요. 그 수치를 공시할 의무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공개하는 건 그들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 마크 코헨 교수)입니다.
그런데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절도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대놓고 밝히는 기업들이 늘고 있죠. 미국 유통 대기업 타깃이 대표적인데요. 지난해엔 절도로 인해 연간 4억 달러에 달하는 타격을 입었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 5월엔 연간 5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한다고 이미 밝혔습니다. 얼마 전 2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타깃의 브라이언 코넬 CEO가 소매업체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소매 절도와 조직적인 소매 범죄에 맞서고 있다”고 말했죠.
24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노드스트롬의 에릭 노드스트롬 CEO도 비슷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도난으로 인한 손실이 역사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힌 겁니다.
홈디포 CFO인 리차드 맥파일 역시 2분기 총 마진(33%)이 1년 전보다 8%포인트 감소한 요인으로 “(도난을 포함한) 재고손실로 인한 압력”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소연했죠. “재고손실은 지난 몇분기, 길게는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된 압력입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다루고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매장에서 가장 많이 도난 당한 물건은 타깃의 경우 비누·샴푸 같은 개인 생활용품, 홈디포는 전선·배선장치·전동공구라고 하는군요.
대형 유통업체들이 줄이어 이렇게 고백할 정도이면 도둑질이 미국 유통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소매점 절도가 1년에 얼마나 발생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전국소매연합(NRF, National Retail Federation) 추정치가 거의 유일한 전국적인 데이터인데요. 2021년 연간 소매점 도난 금액이 945억 달러(약 125조원)로 전년(908억 달러)보다 4% 증가했을 거라고 합니다.
뻔뻔하고 대담해진 절도범들
굳이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좀도둑이 늘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경우엔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물가가 무섭게 치솟았었죠. 따라서 인플레이션 때문에 소매 절도가 늘어났을 거란 해석이 나오는데요.
이런 생필품 위주의 소소한(?) 도둑질 증가를 부추기는 또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바로 셀프계산대입니다. 좀도둑 경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엔 사람이 아닌 컴퓨터 계산원을 만나면 자신의 도둑질을 합리화하게 된다는데요. 미국에선 셀프계산대 절도 수법을 일컫는 용어인 ‘바나나 트릭’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나나 같은 저렴한 농산물 바코드를 찍고 실제로는 무게가 비슷한 티본 스테이크를 가져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 유통기업을 괴롭히는 절도는 이 정도 수준의 범죄가 아닙니다. 주범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조직화된 소매 범죄(Organized retail crime)입니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뻔뻔하고 교묘한 절도범들입니다.
8월 12일 토요일 오후, LA 쇼핑몰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후드티 모자를 쓴 일당 30여 명이 난입해 무려 35만 달러어치의 상품을 훔쳐 달아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죠. 그런데 바로 그 며칠 전인 8월 8일에도 역시 LA에 있는 이브랭로랑 매장에 최소 30명의 떼강도가 난입해 30만 달러어치 이상을 훔쳐갔고요. 노드스트롬 사건 바로 다음날인 13일엔 LA 동부 나이키 매장에서 도둑들이 태연히 수천 달러어치 상품을 품에 한가득 들고 걸어나가기도 했습니다. 플래시몹처럼 여러 명이 달려들어 물건을 훔쳐가는 절도 사건이 LA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정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요. 오죽하면 ‘절도가 이제 새로운 전염병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지난 4월엔 워싱턴주 린우드의 한 쇼핑몰에 있는 애플 매장에서 496개의 아이패드(약 50만 달러어치)가 도난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두개 슬쩍이 아니라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선반 하나를 통째로 가져가버리는 식의 폭도들이 활개를 칩니다. 아예 물건을 운반하는 트레일러가 통째로 도난 당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소매연합 2022년 소매 보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런 조직화된 소매 범죄 사고는 1년 전보다 26.5% 증가했습니다.
이런 범죄가 명품이나 귀금속 같은 사치품을 대상으로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쉽게 훔칠 수 있으면서 다시 팔기가 쉬운 일상소비재가 오히려 주요 타깃이죠. 예컨대 면도날·세탁세제·의류·알레르기약 등이 표적이 됩니다.
즉, 조직적인 소매범죄는 재판매가 용이한 것과 관련 있습니다. 요즘엔 개인이 손쉽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장터 같은 ‘마켓플레이스’ 서비스가 다양하죠. 미국에선 아마존·페이스북·이베이·오퍼업 등이 이런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덕분에 좀도둑질의 수익성이 높아진 겁니다. 과거 좀도둑들은 본인이 쓸 생필품을 필요한 만큼 훔쳤다면, 이젠 횡재를 노리고 대담한 도둑질을 벌이는 나쁜 사람들이 늘고만 있습니다.
소비자도 정부도 손해 막심
절도범죄가 늘면 누가 손해일까요. 언뜻 물건 파는 기업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실제론 소비자 전체는 물론 지역사회까지 손해가 막심입니다.
소매점이 절도에 취약한 건 당연합니다. 영업시간엔 항상 문이 열려있고, 누구나 제지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 도둑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품에 일일이 도난방지 태그를 붙이고, 감시카메라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고, 고가품은 유리장 안에 넣은 뒤 자물쇠로 잠가버려야겠죠. 미국의 다이소 격인 달러트리(Dollar Tree)의 릭 드레일링 CEO는 “일부 제품은 케이스에 넣어 잠가놓고, 일부 제품은 계산대 뒤로 위치를 옮기고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이런 조치엔 당연히 상당한 투자비가 듭니다. 그럼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겠죠.
소비자들의 고객 경험도 훼손됩니다. 뉴욕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세탁세제까지 잠긴 캐비닛에 넣어두었는데요. 20달러도 안 되는 세탁세제를 사기 위해 고객은 직원을 불러 잠금장치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미국 뷰티소매점 울타(Ulta)는 향수가 너무 많이 도난 당한다며 연말까지 전체 매장의 70%에 잠금장치가 있는 진열장을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는데요. 불편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쇼핑 의욕마저 떨어뜨리게 됩니다. 의류회사 VF코퍼레이션의 마티 앤드류 부사장은 이렇게 고민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소매점에 가는 이유는 상품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매장은) 어떻게 제품을 보호해야 할까요?”
매장에서 상품을 도난 당하면 주정부 입장에선 세금 손실이 발생합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떼는 부가가치세를 그만큼 잃게 되는 거니까요. 주마다 세율이 다르긴 하지만 소매 절도로 인한 연간 전체 세금 손실금액이 38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절도 증가를 이유로 매장이 문을 닫기라도 하면 파장은 일파만파이죠. 일자리가 줄고 지역 경제에 충격을 줄 테니까요. 얼마 전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매장을 폐점한 이유 중 하나가 절도 범죄 증가 때문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요. 지난해 12월 월마트 더그 맥밀런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절도 증가 추세가) 시정되지 않으면 (판매)가격이 오르거나 매장이 문을 닫게 될 겁니다.”
결국 조직화된 소매범죄가 늘어나는 건 소매업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까지 모두 절도 근절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처벌 수위 높이기, 효과는?
가장 확실한 대책 중 하나는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겁니다. 미국에선 주마다 다르지만 중범죄와 경범죄를 가르는 절도 금액 기준의 평균이 1180달러입니다. 훔친 물건 금액이 이 기준선에 못 미치면 경범죄이기 때문에 검찰 기소 대상이 되지 않죠. 이 기준 금액을 낮추거나 상습범이면 훨씬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데요. 실제 뉴욕시는 지난해 발생한 2만2000건의 소매 절도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건의 30%를 327명의 상습범이 저질렀다는 통계를 발표해서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심지어 이들 중 70%는 감옥 밖에 있다고도 밝힘).
미국 하원과 상원엔 이미 이와 관련한 법안(조직화된 소매범죄 퇴치법)이 상정돼있습니다. 12개월 동안 총 5000달러 이상 어치를 훔치면 ‘조직화된 소매범죄’로 규정하고 엄중하게 다루는 법안입니다. 이런 범죄 저지르면 연방자금세탁법에 따라 기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죠.
이와 별개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판매자 감시 의무를 부여하는 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해 지난 6월부터 발효됐습니다. 온라인 장터가 장물 판매의 통로가 되지 못하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조치인데요. 중고가 아닌 새 제품(미사용 제품)을 연 200건 이상 판매하는 대량 판매자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정보를 확인해서 공개해야만 합니다. 이에 따라 아마존과 월마트는 웹사이트에 ‘도난 의심 상품을 신고하라’는 메시지를 게시하기 시작했죠. “의심스러운 활동을 신고하는 건 플랫폼과 소비자의 몫”이라는 게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보호국의 설명입니다.
물론 도둑을 잡는 것 못지 않게 애초에 도둑질 자체가 덜 일어나게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는 빈곤·정신질환·약물남용 같은 사회 이슈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치료와 교화, 복지의 문제인데요. 해결에 이르기가 그리 쉽지 않죠. “우리는 이 문제(조직화된 소매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건 단일 소매업체가 해결할 수 없는 커뮤니티의 문제”라는 타깃의 브라이언 코넬 CEO 발언이 과장은 아닌 듯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소매 절도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종 전염병 같은 현상일까요. 아니면 기본적인 보안 투자를 게을리한 소매기업들의 앓는 소리일까요. 여전히 미국에서도 논란은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대담해지는 절도 행각이 툭하면 SNS에 영상으로 올라오면서, 더 강하고 확실한 처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국 소매기업들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절도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도둑질로 인한 손실이 역대 최대라고 합니다.
-소매절도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인플레이션과 셀프 계산대를 꼽기도 하는데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적인 범죄가 늘고 있단 점입니다. 여러 명이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이런 범죄는 지난해에만 26% 늘었습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쉽게 재판매가 가능한 게 이런 범죄가 늘어난 이유인데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지역사회 전체에까지 손실을 끼치는 조직화된 소매범죄. 이를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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