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지루하다고? ‘이곳’에서 ‘클래식DJ’를 만나보세요[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9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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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이스트 조성진의 포니정홀 연주사진. 클라라하우스 제공.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역 바로 앞에는 기하학적 모양의 컬러풀한 도형으로 꾸며진 건물이 있다. 동그라미와 수많은 빗금, 네모, 세모 등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삼성동 코엑스 앞 대로에 단연 눈에 띄는 건축물인데요. 바로 현대산업개발의 지주회사 HDC 본사가 있는 아이파크타워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어울릴 것 같은 이 건물 1층으로 들어가면 뜻밖에도 음악홀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개관한 ‘포니정홀(Pony Chung Hall)’이다.



로비에는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한 포니자동차의 역사를 담은 상설전시물도 있다. 포니정홀이라는 이름은 포니자동차의 신화를 일궈낸 현대산업개발(HDC)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영문이름인 ‘포니정’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대기업 본사 건물 로비에 있는 음악홀 중에서는 단연 서울 광화문 새문안로에 있던 ‘금호아트홀’이 유명했다. 클래식 애호가로 유명했던 고 박성용 전 금호그룹 회장의 지원아래 2000년 개관한 이래 19년 동안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선우예권 등 수많은 스타 연주자들을 배출해낸 실내악 음악홀이었다. 그러나 금호그룹이 본사건물을 매각하면서 2019년 4월 폐관돼 클래식팬들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포니정홀,
포니정홀을 개관한 주인공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이다. 정 회장은 2019년부터 포니정홀의 운영을 클래식 음악 전문가에게 맡겨왔다. 대전과 제주 등에서 클래식 전문 음악살롱을 운영해온 사단법인 클라라하우스의 유혁준 대표(음악칼럼니스트)다.

포니정홀을 운영하고 있는 유혁준 클라라하우스 대표.

교통이 편리한 대기업 로비에 있는 포니정홀이 기존의 콘서트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첨단 오디오/영상(AV)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60석 규모의 홀에서 평소에는 클래식 음악과 영화, 미술 등 인문학 강연이 열리고, 정기적으로 스타 연주자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도 개최한다.



포니정홀 입구에 있는 육중한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대 위에 올려진 대형 스피커와 앰프, 영상시스템이 눈에 띈다. 아날로그 LP에서 4K 블루레이로 공연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5만 여장의 음반과 블루레이 등 다양한 소스를 갖추고 있다.


우선 무대 위에 놓여진 프랑스의 하이엔드 앰프와 스피커가 주목을 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피커브린대 ‘포칼’의 플래그십 스피커 ‘그랜드 유토피아’(Focal Grand Utopia 3EM)와 프랑스 드비알레(Devialet)의 플래그십 앰프 ‘1000Pro Dual’의 조합은 대형 공간도 충분히 울리면서도 우아한 사운드를 재생한다.

특히 공연장르에 따라 잔향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개폐식 잔향가변장치가 벽면에 설치돼 울림과 반향을 자동조절할 수 있다. 이렇듯 첨단 음향홀에 설치된 AV시스템이기 때문에 현장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음악을 재생해낸다.

정면에는 220인치 스튜어트 스크린이 걸려 있고, 레이저 프로젝터(벤큐 LK970)를 통해 4K화질의 영상이 재현된다. 영화관 만큼 세밀하고 고품질의 화면이다.


이 영상과 스피커를 통해 오페라와 콘서트 실황을 보면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다. 또한 음악영화를 볼 경우에도 생생화 화면과 고품질의 음향효과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혼자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음악을 들으면 마치 공연장에서 실연을 보는 것처럼 집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공연장과 같은 완벽한 음향으로 스피커에서, 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여기에 간단한 해설만 곁들여주면 클래식 초보자라 해도 몰입이 가능합니다.” (유혁준 클라라하우스 대표)


유 대표는 매주 수요일 오전과 저녁에 두차례에 걸쳐 포니정홀에서 ‘유혁준의 음악이야기’를 강의한다. 해마다 직접 방문한 ‘잘츠부르크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 등 유럽의 여러 클래식 공연장과 축제 이야기도 펼쳐낸다. 평소 일간지와 음악전문잡지 등에 진지한 음악 평을 쓰는 칼럼니스트지만, 포니정홀에서 만큼은 말보다는 좋은 곡을 우수한 음향으로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 디제이 역할에 충실한다. ​


구수한 경북 사투리를 섞어서 진행하는 그의 클래식 음악이야기는 한순간도 지루하거나 졸립지가 않다. 평생 모아온 클래식 음반 뿐 아니라 팝, 재즈, 록음악, 가요 LP를 활용해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음악을 비교 감상하기 때문에 해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강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해설하는 장면은 이렇다. 우선 1막에서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 그이였던가… 언제나 자유롭게’를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부르는 LP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영상에 가사를 띄워 함께 감상한다. 그리고는 호주 출신의 팝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를 LP와 뮤직비디오로 이어 듣고 보는 순서다.

유 대표는 “약물과 알콜중독, 우울증과 자살시도를 겪었던 시아의 ‘샹들리에’의 노래는 비올렛타의 아리아와 가사도 너무도 비슷하고, 음악적 흐름이 같다”고 말한다. 대중음악도 강력한 비트의 반주만 다를 뿐, 클래식 음악과 동일한 예술적 감흥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2악장을 들려주고, 이 선율을 노래하는 루이스 터커의 ‘Midnight Blue’를 1985년 당시의 LP음반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감상하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LP음반으로 듣는다.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의 가사를 해석하고, 로열 앨버트홀에서의 라이브실황을 함께 감상한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1991년 오리지널 LP음반으로 강의를 시작하고, 케빈컨의 ‘Through the Arbor’을 강의 마지막곡으로 선곡한다.


경인방송 라디오에서 클래식 전문 PD와 작가로 일했던 그는 강연에서도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스토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의 선곡을 중요시한다. 매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 등 유럽 음악여행을 떠나는 유 대표는 특히 러시아는 30여 차례 방문했으며, KBS FM을 통해 8시간 러시아음악 특집방송을 한 러시아 음악 전문가이기도 하다.


특히 아날로그 LP 사운드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950년대 60년대 모노로 녹음된 초반을 감상하면 요즘 고음질 디지털 사운드와는 다른 해상력이 좋고, 부드럽고, 실연에 근접한 사운드가 재생된다.


2016년부터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아날로그 LP음반 감상회는 전국에서 LP사운드 애호가들이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쉬었음에도 다음달 14일이면 65회 LP음반 감상회가 열릴 예정이다.

도심 속 살롱문화
강남 한 복판에 있는 포니정홀은 도심 속 ‘살롱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르네상스기에 생겨나 20세기까지 이어졌던 유럽의 살롱은 유럽의 정신을 상징하고, 여성 해방의 시험무대였습니다. 특히 19세기에는 ‘문학살롱’의 범주를 벗어나 음악이 결합해 숱한 살롱에서 음악회와 토론회, 세미나가 이뤄졌습니다. ‘살로니에르’라 불리는 당시 살롱 여성들에 의해 예술의 소비가 진행되고 발전해갔음을 알 수 있죠.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 살롱 ‘살 플레옐’에서 사랑과 연주를 함께 했고,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학카페’에서 예술을 나눴습니다. 클라라하우스와 포니정홀은 19세기 유럽의 살롱의 긍정적인 면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포니정홀은 정상급 연주자를 초청하는 기획공연을 펼쳐왔다. 큰 공연장과 달리 60석 규모의 살롱에서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실연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유혁준 대표의 해설을 곁들인 살롱 음악회는 19세기 유럽의 살롱을 연상케 한다.

아벨콰르텟 (c) stp_print
아벨콰르텟 (c) stp_print

올해는 10월5일 아벨 콰르텟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10회에 걸쳐 ‘2023~2024 클래식 시리즈’를 자체 기획공연으로 펼친다. 소프라노 임선혜, 테너 김세일, 피아니스트 손민수, 임주희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연주자들을 초청했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현악4중주단 ‘아벨콰르텟’은 9월8일 첫 음반을 소니클래시컬에서 출시했다. 아벨 콰르텟은 10월5일 하이든 프로그램으로 포니정홀 클래식 시리즈 문을 연다.

소프라노 임선혜  (c)Chagoon
소프라노 임선혜 (c)Chagoon

현재 영국에서 영국 작곡가에 흠뻑 빠져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은 11월21일 엘가와 본 윌리엄스, 브리튼의 걸작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12월27일 번스타인 앙상블과 함께 송년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달콤한 노래와 영화, 뮤지컬까지 아우른다.

목관 오중주단 ‘뷔에르 앙상블’은 내년 1월23일 목관악기의 수수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2024년을 시작한다. 내년 3월19일에는 젊고 패기 있는 아레테 사중주단이 봄을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슈만과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시인의 사랑’은 박유신이 첼로로 노래한다(5월21일).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쇼팽의 피아노 작품으로만 무대를 꾸민다(7월16일).

2024년 가을은 김홍박의 호른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9월30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스승이기도 한 음악가 손민수의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전곡 연주(11월12일), 테너 김세일의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전곡(12월17일)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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