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상승-이상기온 겹쳐
사과값 1년 전보다 94% 급등
우유는 14년 만에 최대폭 올라
저소득층, 소득의 40%가 식비
“사과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어요. 아무리 유기농이라지만 사과 3개에 2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김모 씨(39)는 최근 마트를 찾았다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좋아하는 사과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결국 나와 아내는 입도 못 대고 아이만 주고 있다”며 “물가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뛰었다”고 말했다.
3%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10월까지 식료품과 비(非)주류 음료 물가가 5%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까지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들 품목은 3년 연속으로 연간 5% 넘는 상승 폭을 보이게 된다. 먹거리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구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 곡물-원유 오르며 가공식품↑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1∼10월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올랐다. 3년 연속으로 5%대 상승 폭을 보일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2019년 연간 0% 상승률을 보였던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는 2020년 4.4% 급등한 후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5.9% 올랐다. 이들 품목의 물가 상승률이 3년 연속으로 5%를 넘은 건 2009∼2011년 이후 처음이다.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의 오름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데는 원유(原乳)와 곡물을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오른 영향이 크다. 최근에는 이상기온까지 겹치면서 과일, 채소류 등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사과 가격이 1년 전보다 최대 94% 넘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유 가격 역시 1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우유 물가는 1년 전보다 14.3%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20.7%) 이후 14년 2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달 원유 가격이 인상된 탓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달부터 1L짜리 흰 우유 출고가를 대형마트 기준으로 3%가량 올렸다.
국제 설탕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먹거리 물가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설탕 가격지수는 159.2로 집계됐다. 9월보다 2.2% 하락했지만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잡기 때문에 160에 육박하는 현재 지수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설탕값이 뛰면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 인상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 하위 20%는 소득 40%가 식비
먹거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욱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 2분기(4∼6월) 기준으로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가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외식 등 식사비에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38만2208원이었다.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94만6969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소득의 약 40%를 식비로 지출하는 것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가 식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처분가능소득의 15.6%에 불과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물가 관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라면,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설탕, 원유 등 7개 품목에 대한 담당자를 각각 지정해 가격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제품의 가격을 정부가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제품의 가격 오름세는 정부가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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