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강경석]서울시의 저출생 정책이 반가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8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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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석 사회부 차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2011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복지정책에 대해 오 시장은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앞세워 비양심적 매표 행위를 하고 있다. 망국적 무상 쓰나미를 막지 못하면 국가가 흔들린다”고 날을 세우며 시장직을 걸었다.

필자는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였다. 무상급식 이슈가 전국적 화두가 되면서 서울시 관계자들로부터 왜 선택적 복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당시 주민투표율이 개표 기준인 33.3%에 미달해 25.7%에 그치며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한 채 오 시장은 사퇴해야 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시장직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그 이후 사석에서 오 시장을 만날 때마다 그는 시장직을 걸었던 걸 후회하면서도 선택적 복지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피력했다. 그런데 최근 만난 40대 직장인 여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의외였다. 이 여성은 “서울시가 난임부부 시술비를 소득 기준 구분 없이 지원해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보건복지부의 난임 시술비 지원은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지원받을 수 없어 맞벌이 부부는 사실상 꿈도 못 꿨다”고 했다.

오 시장이 저출생 대책만큼은 보편적 복지를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는 올 3월부터 난임 시술비 지원 소득 기준을 폐지했고, 모든 출산 가정에 산후조리비 1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 존폐의 문제가 걸린 저출생 위기 탓이다.

난임 시술을 받으려면 한 달에 서너 차례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시술비는 많게는 400만, 500만 원이 든다. 3년 넘게 난임 시술을 받고 있다는 30대 직장인은 “어떻게 해서든 출생률을 높이겠다는 정부가 난임 시술비는 소득 기준에 따라 주는 걸 보고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서 내놓은 한심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년 1월부턴 전국 어디서든 소득 기준과 관계없이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월 소득 일정액 이하 가정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에게만 지원했지만 보편적 복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남은 숙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원래 보건복지부가 담당했던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 지자체마다 예산 사정이 다르다 보니 서울처럼 상대적으로 넉넉한 곳은 문제가 없지만 살림이 팍팍한 곳은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자체 사업이라고 뒷짐만 진 채 수수방관한다면 재정난을 겪는 지역에선 난임부부 지원 사업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 8월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을 국가 사업으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1년 전 시장직을 걸었던 오 시장도 저출생 문제만큼은 한발 물러섰다. 정부 역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난임부부 지원 사업을 정부 사업으로 다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서울시#저출생#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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