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치심이 없어서 그런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유튜브 크리에이터 ‘사내뷰공업’ 김소정 PD에게 ‘자기 얼굴 드러내는 일을 하시는 게 괜찮은지’ 묻자 들은 말이다. 김소정은 내가 일하는 매체의 특집 기사 건으로 만났다. 구독자가 최소 50만에서 600만에 이르는 크리에이터 11명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대형 기획이었다. 그들은 모두 인생을 돌파하듯 살아간다는 점에서 멋졌고, 사내뷰공업은 조금 더 기억에 남았다. 철저한 일상 기반 콘텐츠이기 때문이었다.
김 PD는 기획과 촬영에 연기까지 하는 신개념 PD다. 그가 연기하는 건 다양한 일반인 ‘부캐’다. 중학생, 고등학생, 서울에 상경한 대학생, 직장인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 취업 준비를 한 대졸 직장인이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대학 때의 연극반 경험이고, 생활형 연기의 원천도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이라고 했다.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총력전처럼 사는데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모두 ‘크리에이터’나 ‘부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은 모두가 쓴맛을 보거나 실패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나도 성공 경험은 적고 실패 경험은 많다. 어느새 나는 그에게 내 고민을 묻고 있었다. 열심히 만든 결과물의 반응이 나쁘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그의 대답은 총력전 인생다웠다. 결과가 안 나오면 빨리 다른 콘텐츠를 만든다. 스트레스 해소는 운동으로 한다. 그래서 피지컬 트레이닝을 3시간씩도 한다.
이런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내 팀 30대 초반 후배 에디터는 헬스 애호가 문청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1시간씩 운동을 한다. 국민의힘 도봉구 당협위원장 김재섭은 어느 인터뷰에서 “5060 장년층 시각으로는 일주일에 5∼6일 헬스장 가서 쇳덩어리와 씨름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2030 남성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 기사에는 김재섭의 ‘3대 중량 운동’(벤치프레스, 스쾃, 데드리프트) 합산 기록이 530kg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소정은 여성인데 3대 기록이 310kg이다. 옆자리 후배의 덩치도 상당하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 바둑 판세처럼 관망하는 저성장 고물가 시대가 보통 젊은이들에게는 새까만 현실이다. 학벌은 비싸고 취업은 고되고 집값은 학벌보다 더 비싸니 사랑도 결혼도 육아도 엄두를 못 내는데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이런 세상이니 버티는 방법마저 내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운동처럼 건강에 좋은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업무 스트레스를 다른 업무로 지우거나. 스마트폰 스크린에 뜨는 익명게시판 바깥의 현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총력전으로 살고 있다.
“제가 수치심이 별로 없어서요. 그런데 약간은 느꼈던 적도 있었을 거예요.” 무리한 호캉스나 고가품 등 ‘나 아닌 것’을 SNS에 편집해 올리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상경기나 알바 등을 숨길 생각을 안 하셨냐’는 내 마지막 질문에 김소정은 답했다. “제 경험을 보여준 게 선례가 되어 힘든 분들이 열심히 사는 분위기가 생성되면 정말 좋겠어요.” 나는 이런 삶을 좋아한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금 더 나아가는 삶을. 그렇게 올해를 살아온 모든 분들께 연하장 같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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