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시작된 방에 담배꽁초-라이터… 방화-누전 가능성은 배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7일 03시 00분


방학동 아파트 화재 연관성 조사
“화재 발생 3층엔 스프링클러 없어”
소방청 “무조건 대피가 답은 아냐”
주택 화재 개정 매뉴얼 지난달 배포

성탄절 새벽 32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 최초 발화 장소에서 다수의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발견됐다. 경찰은 26일 소방 및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진행한 합동감식에서 담뱃불이 주위로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 “담배꽁초와 라이터 발견”


도봉경찰서는 이날 합동감식을 통해 25일 오전 아파트 3층 거실 옆 작은방에서 처음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나 누전 등 전기 요인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은 배제했다”며 “발화 장소에서 담배꽁초와 라이터를 발견하고 화재와의 연관성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화재경보기는 정상 작동했지만 방화문이 대부분 열려 있었고, 화재가 발생한 3층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밝혔다. 방화문은 불길이나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문으로 현행법은 항상 닫힌 상태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가기 불편하다는 이유 등으로 열어둔 채 지내는 곳이 적지 않다. 26일 화재가 난 아파트의 다른 동을 둘러본 결과 화재 다음 날임에도 22층 중 4개 층의 방화문이 개방돼 있었다.

또, 2004년 11층 이상 공동주택의 경우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이 강화됐지만 해당 아파트는 2001년에 준공돼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연기는 순식간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방화문을 반드시 닫아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 소방청 “무조건 대피 말아야”

소방청에선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통념과 달리 무조건 대피하는 게 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상황에 따라 집 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2021년 아파트 화재 당시 숨지거나 부상당한 1670명 중 653명(39.1%)은 대피하다 피해를 입었다.

소방청은 또 대피해야 하는 경우와 집 안에서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경우로 나눈 ‘아파트 화재 재난 안전대책 개선 방안’ 매뉴얼을 지난달 9일 배포했다. 개정 매뉴얼에 따르면 이웃집에서 불이 난 경우 집 안으로 화염·연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대피하는 대신 119에 구조 요청을 하고 창문을 닫아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한 뒤 대기해야 한다. 집으로 화염·연기가 들어오는 경우는 복도나 계단에 화염·연기가 없을 경우에만 지상이나 옥상으로 대피하게 했다.

실제로 방학동 화재 때도 11층 비상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임모 씨(38)의 경우 대피하다 비상계단으로 유입된 유독가스에 의해 질식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20층에 거주하는 70대 박모 씨도 계단으로 탈출하려다 연기를 흡입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가 의식을 회복하고 치료 중이다. 반면 이들과 같은 라인에 살고 있던 13층 주민 송모 씨(41)는 집 안에 있다가 구조됐다.

소방청이 매뉴얼을 바꿨지만 여전히 전국 광역지자체 17곳 중 4곳만 새 매뉴얼을 홈페이지에 반영해 놨다. 소방청의 상위기관인 행정안전부도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새 매뉴얼을 반영하지 않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새 매뉴얼을 반영한 대피 요령이 각 가구로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방학동#아파트#화재#도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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