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TSMC직원 자녀들 위해 학교 옮기고 대만어 수업 신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7일 03시 00분


[일본 반도체의 역습]
〈중〉 日-TSMC의 ‘밀월’

대만 TSMC가 내년 2월 준공할 예정인 일본 구마모토 파운드리 1공장. 이 공장이 지어지면서 일본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인근 지역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대만 TSMC가 내년 2월 준공할 예정인 일본 구마모토 파운드리 1공장. 이 공장이 지어지면서 일본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인근 지역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국제학교 ‘구마모토 인터내셔널’은 9월 구마모토시 히가시구로 확장 이전했다. 내년 4월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반년 이상 앞당겼다. 대만 TSMC의 구마모토 1공장 완공이 다가오면서 주재원과 그 가족이 미리 일본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TSMC 주재원 및 가족은 75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구마모토 인터내셔널이 확장 과정에서 뽑은 직원 20명 중 4명은 대만인이다. 영어 70%, 일본어 30%를 사용하는 국제학교지만 대만어 수업도 열 계획이다. 인근 구마모토대 부속 초중고교도 TSMC 주재원 가족을 위한 영어 수업을 신설키로 했다.

일본 금융기업 규슈파이낸셜그룹은 TSMC가 구마모토현 지역 경제에 미칠 효과가 10년간 6조9000억 엔(약 62조876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규슈 경제에 ‘100년에 한 번 올 기회’”라고 했다. 실제 일본 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TSMC 인근에 잇달아 투자를 진행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TSMC가 11조2000억 원을 투자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공장에 이어 2, 3공장까지 확정할 경우 효과는 더 증폭될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과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을 목표로 한 TSMC가 점차 강한 밀월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은 6월 개정한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에 따라 국내 생산기반 강화(1단계)와 차세대 설계기술 확보(2단계) 등을 추진 중이다. 팬데믹 당시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생산 차질을 겪은 일본은 외국 기업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국 내 공급망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TSMC, 日에 해외 첫 R&D센터… 日 ‘소부장’ 업계, 투자로 화답


팬데믹때 ‘반도체 부족’ 홍역 치른 日
연구-제조-판매 ‘자기완결주의’ 포기
불리한 조건 감수, TSMC에 양보
TSMC 2, 3공장까지 추가 검토
“일본이 ‘자기완결주의(自前主義)’를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일본 경제·산업 전문가인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과 대만 TSMC의 협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일본 제조업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경영 이념인 자기완결주의는 기초 연구부터 제품 개발, 제조, 판매 등 일련의 가치사슬을 일본 기업이나 계열사가 독점하는 방식을 말한다.

● 반도체 앞에 자존심은 없다


‘반도체 제국’ 일본은 메모리 산업에서 한국에 추월당한 뒤 자체 생산보다는 해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에 의존하는 ‘팹 라이트’ 전략을 채택해 왔다. 그 대신 강력한 소·부·장 기업을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 반도체 부족으로 도요타, 소니 등의 주요 공장에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일본 정부가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10년 이상 공장 운영’과 ‘반도체 부족 시 일본에 우선 공급’을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해외 파운드리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10월 TSMC가 구마모토 진출 계획을 밝히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투자의 절반을 보조하겠다”며 환영했다. 일본과 TSMC가 강력한 협업 파트너로 떠오른 시점이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TSMC는 지난해 6월 일본 과학도시 쓰쿠바시에 해외 첫 연구개발(R&D)센터를 여는 것으로 화답했다. R&D센터 구축에 든 370억 엔(약 3367억 원) 중 190억 엔을 일본 정부가 부담했다. 기술 유출에 예민한 반도체 업계인 만큼 일본 정부는 연구 성과를 모두 TSMC에 양보하는 등 다소 굴욕적인 조건도 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구마모토 2, 3공장을 추가 검토하면서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 日 소·부·장도 합세


TSMC의 진출에 발맞춰 일본 소·부·장 업체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본 최대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은 TSMC 구마모토에 2025년 준공을 목표로 430억 엔을 투자해 개발 공장을 짓는다. TSMC가 진출한 규슈 지역 사업 규모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돗판은 포토마스크, 기판 제조 등의 투자를 확대했고, 덴소는 2030년까지 5000억 엔을 반도체 부문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기대하던 대로 생태계 전체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TSMC로서는 첨단 반도체 경쟁이 패키징(후공정)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일본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은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며 “일본과 TSMC의 밀월이 장기화될수록 삼성 등 한국 기업에는 장·단기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한 일본의 다음 단계는 2나노 이하 차세대 설계 기술인 만큼 양측의 밀월이 길게 이어지진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최종적으론 ‘메이드 인 저팬’이 아닌 라피더스 등 ‘메이드 바이 저팬’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다. TSMC 역시 미국의 군사적 도움을 받는 대만의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 첨단 공정을 일본으로 과감하게 가져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첨단 공정은 결국 자국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반도체#tsmc#반도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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