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의 삶 속으로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3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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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겪고도 인간을 믿는 개
변방의 삶에 지쳐버린 노부부
그 조건 없는 친밀함에 관하여
◇내 식탁 위의 개/클로디 윈징게르 지음·김미정 옮김/396쪽·1만8000원·민음사

한국어로 옮기면 ‘추방당한 숲’이란 뜻을 갖는 ‘부아바니’. 이 숲속에서 3년째 살고 있는 80대 부부 소피와 그리그 앞에 어느 날 상처투성이인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인간에게 학대당한 것처럼 보이는 개는 낯선 사람에게 배를 보이며 드러눕는다.

이 장면을 본 소피의 머릿속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문장, “그렇다(yes),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 나는 예스라고 말할 것이다”가 떠오른다. 처참한 폭력을 당했음에도 인간을 믿는 개에게 소피는 ‘예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먹을 것을 주었지만 개는 다시 사라져 버린다.

소피와 그리그는 30대가 되기 전부터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험하려고 도시를 떠나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산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소피는 소설을 쓰면서 사회와 연결 고리를 잃지 않았는데, 예스가 사라진 다음 날 서점 행사를 위해 숲을 떠난다.

‘동물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그녀는 서점에 가서 변방에 사는 여성 작가로서 소외된 존재들을 대변하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행사는 불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연착된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소피의 앞에 예스가 다시 나타난다. 변방에서의 삶에 지쳐 있는 두 부부에게 예스의 조건 없는 친밀함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히피 문화가 꽃피던 1965년 남편 프랑시스 윈징게르와 소비 사회를 떠나 숲으로 들어간 저자의 삶과도 닮아 있다. 저자는 숲에서 양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양털을 염색하거나 풀을 그려서 예술 작품을 발표하고 글을 썼다.

변두리 숲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삶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하루하루 자연이 무너지는 시대에 비로소 그 위기를 공감한 사람들이었다. 70세에 소설가로 데뷔한 저자는 데뷔작부터 거의 모든 작품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소설은 프랑스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페미나상’을 지난해 받았다.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윈징게르의 소설이다.

#추방당한 숲#변방의 삶#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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