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일하다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어떤 일화는 허무맹랑해 믿기 어려울 정도지만,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아들은 아버지의 위대함과 실패를 동시에 이해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이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대니얼 윌리스의 소설 ‘빅 피쉬(Big Fish)’ 줄거리다. 이 소설을 번역한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는 그 싸움을 용감하게 치러내는 영웅들”이라고 했다.
스토리의 힘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에도 적용된다. 프랜시스 프레이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와 앤 모리스 리더십컨소시엄 설립자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에 게재된 ‘담대한 변화를 끌어내는 스토리텔링’ 아티클에서 조직에 큰 변화가 필요하거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프레이 교수는 “보통 조직 개혁의 70%는 실패로 끝나지만 설득력 높은 이야기를 만들면 승산이 높아진다”며 “스토리는 혁신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뿐 아니라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구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보여 준다”고 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스토리를 만들려면 우선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거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꾸고 싶은 일들에 너무 집중하면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 버릴 수 있다. 2017년 사내 성추행, 기술 도용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우버의 구원투수로 부임한 다라 코즈로샤히 최고경영자(CEO)는 전 직원과의 첫 미팅에서 우버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강조하는 대신 “우버를 시장 강자로 만들었던 그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해 직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리더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직을 바꿀 수 있다. 리더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본인이 구상하는 조직의 변화를 위한 발판이 되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공유할 때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마틴 리브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BCG 헨더슨 인스티튜트 회장은 “사람들은 늘 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며 “단순한 사실과 정보는 스토리를 통해 비로소 비즈니스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차원적인 가치를 전달하고 이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경쟁 우위의 핵심 원천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에 따르면 스토리텔링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영감을 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미국의 작가 팀 오브라이언은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필수 활동”이라며 “상황이 어려울수록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올해 나 또는 조직을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인지, 새해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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