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판사 로펌 직행도 취업 제한으로 막으면 된다 [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4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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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법관의 꽃’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고등법원 판사가 ‘법관의 꽃’ 비슷해진 모양이다. 법원 인사철마다 고법 판사의 대형 로펌행이 줄을 잇고 있다. 고법 판사 퇴직자는 2022년 13명, 2023년 15명이었고 올해도 벌써 서울고법에서만 10명 안팎의 판사가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에는 판사가 되면 지방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순으로 경력을 쌓았다. 지법 부장판사까지는 대부분 됐다. 고법 부장판사부터는 자리가 많지 않다.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법원장이나 대법관을 바라볼 수도 있고 중도에 사직해도 전관(前官)으로서의 활용 가치가 높기 때문에 대형 로펌에서 모셔갔다. 과거에는 고법 부장판사의 로펌행이나 고법 부장판사가 못 된 지법 부장판사의 줄사표가 법원 인사철마다 주요 기사였다.

▷지금 고법 판사의 줄사표는 승진을 못 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 지법 부장판사의 줄사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법과 고법 인사를 분리하는 이원화는 김명수 대법원에서 처음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10년에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지법 부장판사가 될 기수에서 매해 20여 명이 고법 판사로 선발됐다. 이때부터 6년간 고법 판사 선발이 고법 부장판사 조기 선발처럼 인식되는 특수한 시기가 있었다. 고법 판사 선발에 떨어진 판사들은 너무 이른 시기부터 근무 의욕을 잃게 됐다.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2017년 김명수 대법원에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주목할 것은 고법 부장판사가 더 이상 승진 자리가 아니게 된 다음에도 서울 수원 등 수도권 고법 판사 선발 경쟁률은 10 대 1을 넘고 지방 고법도 2 대 1 정도의 경쟁률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법이 대등합의부로 운영되면서 고법 판사들의 업무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과거와 같이 고법 부장판사의 권한을 누리고 법원장 보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 없어졌지만 법원 내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판사로 인정돼 중도에 사직해도 대형 로펌에서도 귀하게 모셔가는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고법 부장판사는 2015년부터 대형 로펌으로 직행할 수 없다. 고법 판사는 고법 부장판사와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취업 제한이 없다. 고법 판사를 고법 배석판사라고 하지 않는 것은 고법 부장판사와 대등하게 합의부를 구성하기 때문이고 고법 판사는 시간이 지나면 대개 고법 부장판사가 된다. 억지로 고법 판사 시킨 게 아니다. 그렇다면 고법 부장판사에게 적용되는 취업 제한을 고법 판사로까지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법 판사#로펌#취업#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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