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국가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고가 잇따르자 국회는 산업스파이에게 최대 65억 원의 벌금을 물리고 손해배상 규모를 현행 손해인정금액 3배 이내에서 5배 이내로 확대하는 내용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해왔다.
여야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산업스파이 철퇴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 처리를 논의했지만 기술 침해를 신고하는 비밀유지의무자에 대한 면책조항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야당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통과가 불발됐다. 당초 여당을 중심으로 산업스파이를 ‘간첩’에 준해 징역형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벌금형만 높이는 데만 의견이 모였다.
이날 법사위는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했지만 ‘면책조항’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이견을 보여 통과시키지 못했다. 개정안은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시 6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산업기술 유출 시에는 3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산업기술 침해가 고의로 인정되는 경우 손해로 인정되는 금액의 5배를 배상액으로 물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날 법사위에서 쟁점이 된 면책조항은 기존 법에 없던 신설 조항이다. ‘비밀유지의무자’가 기술 침해 사실을 정보수사기관이나 통상당국에 신고하거나 이 내용을 법정에서 진술할 경우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면해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이렇게 광범위한 일반적 면책조항을 본 적 없다”고 했고, 같은 당 김영배 의원이 “기업 비밀을 정부에 신고하는 게 맞느냐”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가 “면책조항을 두지 않으면 비밀유지의무자가 신고나 진술을 하는 순간 3년 이하 징역 또는 3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져 신고가 위축될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여당은 당초 소관 상임위 단계에서 산업스파이의 징역 형량도 크게 늘리려 했었다. 핵심 기술을 유출할 경우 현재는 벌금과 함께 3년 이상의 징역을 적용받는다. 이 징역 기준을 형법상 간첩죄 양형 기준과 같은 7년 이상으로 올리려던 것. 하지만 법안 검토 과정에서 “법정형이 상향되면 처벌 수위가 급격히 강화될 우려가 있고, 65억 원 이하의 벌금 수준이 이미 미국의 ‘경제스파이법’에 준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