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으로
일정 지역마다 같은 시간 공유
한국은 일본과 동일한 UTC+9
실제 표준시는 UTC+8.5지만… 편의성 때문에 1시간 단위 사용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서울 보신각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새해 소원을 빌며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1월 1일은 지구촌 모든 지역에 동시에 찾아온 게 아닙니다. 어떤 나라는 새해 첫날을 먼저 맞았고, 다른 나라는 좀 더 늦게 맞이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요? 오늘의 세계 지리 이야기는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세계 시민들의 서로 다른 시간에 관한 내용입니다.
● 지구의 자전과 태양시
지구는 24시간마다 서에서 동으로 한 바퀴 자전하며 낮과 밤이 교차합니다. 우리나라가 태양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정오일 때 반대편 우루과이는 태양을 등진 자정이 됩니다. 이처럼 지구 자전에 따라 정해지는 시간을 태양시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장소보다 조금만 동·서 방향으로 이동해도 태양시는 바뀝니다. 상상해 보세요.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상대적으로 서쪽에 있는 인천과 동쪽에 있는 서울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면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불편할까요? 아마 비행기나 기차처럼 일정 시간에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교통수단의 이용이나 인천과 서울에 사는 사람 간 시간 약속 등에서 큰 혼란이 발생할 겁니다. 이 때문에 인류는 일정 지역마다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는 표준시를 만들었습니다.
● 표준시와 세계협정시
인류가 처음으로 함께 사용한 표준시는 그리니치 평균시(GMT)입니다. GMT 체계는 영국 런던 근교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세계를 대략 1시간 단위의 24개 표준 시간대로 구분합니다. 그리니치 천문대가 지나는 영국은 GMT+0의 표준시를 가지며 영국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는 GMT+9의 표준시를 가집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영국의 표준시보다 9시간 더 빠릅니다. 만약 영국의 현지 시간이 낮 12시라면 같은 시간 우리나라의 현지 시간은 오후 9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용되던 GMT 체계는 1972년 협정 세계시(UTC) 체계로 바뀝니다. 지구 자전 주기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GMT 체계의 시간 오차를 더 정확한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보정한 표준시 체계가 UTC입니다. 여러 국가에서 정밀하게 측정한 시간을 국제 도량형 총국으로 보내고 그 값을 평균 내 일정 주기마다 정확한 UTC 체계 표준시를 산출합니다. 그런데 UTC라는 명칭에도 재미있는 지정학적 요소가 숨어 있습니다. ‘협정 세계시’라는 용어를 영어로 하면 ‘Coordinated Universal Time’ 즉 CUT가 되고, 프랑스어로 하면 ‘Temps Universel Coordonné’ 즉 TUC가 됩니다. 당시 유럽의 양대 강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자국 용어를 세계 표준으로 정하길 원했고 결국 CUT도 TUC도 아닌 UTC가 공식 용어로 채택됐습니다.
● 날짜변경선과 새해맞이
오늘날 UTC 체계를 중심으로 지구 각 지역과 국가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갖습니다. 대략 24개의 시간대를 갖게 되니 시간이 가장 많이 차이 나는 지역은 서로 만 하루(24시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기에 24시간 차이 나는 두 지역은 서로 접해 있습니다. 인류는 대략 태평양 한가운데 24시간 차이가 발생하는 기준선을 날짜변경선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날짜변경선은 지그재그 형태로 존재합니다. 서로 접한 동·서 지역 사이에서 무려 24시간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주민 일상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겁니다. 따라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날짜변경선은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바다 위로 설정됐고 그러다 보니 지그재그로 그어지게 됐습니다. 날짜변경선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국가는 이번 1월 1일 새해를 다른 어느 국가보다 먼저 맞이했을 것이며 반대로 날짜변경선 기준 동쪽에 위치한 국가는 가장 늦게 1월 1일 새해를 맞이했을 겁니다. 선 하나를 기준으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 보면 결국 시간은 지표상에 표현되는 상대적 개념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 한 국가 내 여러 표준시도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하나의 표준시를 갖습니다. 반면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들은 여러 표준시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는 가장 서쪽인 UTC+2부터 가장 동쪽인 UTC+12까지 무려 11개의 표준시를 갖고 있습니다. 같은 러시아 국민이지만 지역에 따라 최대 10시간의 시차를 경험하는 겁니다. 반면 중국은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표준시가 1개뿐입니다. 중국은 본래 4, 5개의 표준시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영토가 넓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통일성을 위해 수도 베이징을 기준으로 한 UTC+8 표준시를 일괄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쪽 끝에 위치한 우루무치 주민들은 실제 태양시보다 3, 4시간 더 빠른 시간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계상으로 오전 7시가 됐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고, 시계상으로 오후 8시가 됐지만 해가 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에선 시계상으로 오전 11시에 출근하고 오전 2시에 취침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표준시의 변화
우리나라 표준시는 일본 표준시와 동일합니다. 일제강점기이던 1912년 우리나라의 현재 표준시가 일본을 기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UTC+9가 아닌 우리나라만의 고유 표준시인 UTC+8.5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1954∼1961년에는 UTC+8.5 시간대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한 시간 단위의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과 일본 간 거래의 편리성 및 군사적 활용성 등을 이유로 다시 UTC+9로 돌아왔습니다. 북한의 경우 2015년부터 평양 표준시라는 UTC+8.5를 사용했지만, 사용의 불편함으로 2018년 다시 남한과 동일한 UTC+9 표준시로 회귀했습니다. UTC+8.5와 UTC+9 중에 무엇이 대한민국 표준시로 더 적절한지는 아직 논란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표준시는 인간이 임의로 정한 약속에 불과하며 그 약속은 인간이 더 편리하게 일상을 누리기 위해 정해진 것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GMT와 UTC
GMT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구분한 표준 시간대이다. UTC는 GMT 체계의 시간 오차를 더 정확한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보정한 표준시 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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