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시스템 오류 탓에 영국 우체국 종사자 약 700명이 억울하게 횡령범이 됐던 ‘우체국 스캔들’ 피해자들이 약 10년 만에 구제를 받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0일 “긴급 법안을 제정해 피해자들의 유죄 판결을 모두 무효로 하겠다”고 밝혔다. 수낵 총리는 우체국 스캔들에 대해 “영국 역사상 최대 오심 중 하나”라며 “피해자들은 명예를 되찾고 보상받아야 한다”고 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영국에서 법정 판결이 일괄 무효가 된 사례는 처음이다.
‘우체국 스캔들’은 1999∼2015년 영국 전역의 우체국 지점장 및 직원들이 거래 잔액이 일치하지 않아 회계 부정 및 절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하지만 이는 우체국이 1999년 도입한 일본 기업 후지쓰의 회계 시스템 ‘호라이즌’의 오류 탓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여파로 우체국 관계자 236명이 투옥됐으며, 4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돈을 갚느라 파산한 이도 적지 않았다.
스캔들은 2009년 영국 정보기술(IT) 전문지 ‘컴퓨터 위클리’가 문제를 지적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피해자 555명이 집단소송을 걸어 2019년 시스템 오류가 있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최근까지 판결이 번복된 건수는 93건뿐이며, 보상금도 일부만 지급됐다.
잊혀져 가던 사건은 이달 1일부터 영국 민영 ITV의 4부작 드라마 ‘미스터 베이츠 대 우체국’이 방영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직도 법적 구제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며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경찰은 회계 부족분을 채우도록 강요한 혐의로 우체국을 조사하기로 했고, 후지쓰에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영국 정부는 선제적인 구제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무죄 서약’을 받고 유죄 판결을 무효로 한 다음 1인당 60만 파운드(약 1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만약 실제 횡령이 드러나면 서약을 근거로 기소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2014∼2019년 우체국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폴라 베넬스는 드라마 이후 “대영제국 사령관 훈장(CBE)을 취소하라”는 온라인 청원에 100만 명 이상 동참하자 9일 훈장을 반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 편의 드라마가 10년 동안 어떤 정치인도 하지 못한 승리를 거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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