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는 말은 정확하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고베 등 아시아의 개항지에는 동서양이 절묘하게 결합된 나름의 음식문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독 일본만은 특유의 장인정신과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집요한 끈기가 퓨전 음식에도 녹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전직 일본 NHK 서울지국 기자가 쓴 일본 위스키 탐방서다.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일본 현지 증류소 22곳을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을 빼곡히 담았다. 단순히 증류소 소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19세기 중반 개항과 더불어 시작된 일본 위스키의 역사를 통해 본토 스카치위스키를 넘어 ‘저패니스 위스키’로 우뚝 서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일본 위스키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제창하며 서양 흉내내기에 골몰했던 메이지시대 일본인들은 유럽에서 수입한 주정(酒精)에 설탕, 향신료 등을 섞은 ‘가짜 양주’를 위스키로 소비했다. 하지만 서양 주류에 진심이었던 도리이 신지로가 ‘고토부키야 양주점’(산토리의 전신)을 창업하면서 일본식 정통 위스키가 탄생한다.
도리이는 양조장 가문 출신으로 2년 넘게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배워온 다케쓰루 마사타카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한 뒤 5년간 비용만 대면서 무작정 기다려준다. 유명한 ‘야마자키 증류소’가 실제 생산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위스키 제조법 실험이 행해진 것. 5년 동안 막대한 양의 보리가 공급됐지만 아무런 제품도 나오지 않자,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증류소에 보리를 먹어대는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1929년 첫 위스키 제품이 나오지만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실패. 결국 몰트위스키와 포트와인을 섞는 개량이 이뤄진 뒤에야 1937년 ‘산토리 가쿠빈’이 출시되며 기사회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카치위스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일본인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추구해 성공을 거뒀다”고 분석한다. 창조적 모방이 낳은 결실이라는 얘기다. 오카다 데쓰가 쓴 ‘돈가스의 탄생’(2006년)과 함께 읽으면 술과 음식의 궁합처럼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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