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日 거주한 미국인 저자… 변해가는 일본 모습에 만감교차
빛과 어둠 공존하는 현실 그려내… 외국인 최초 ‘최고 논픽션 작품상’
◇사라진 일본/알렉스 커 지음·윤영수 박경환 옮김/400쪽·2만 원·글항아리
“속세를 뒤로하고 마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
미국인인 저자는 일본 시코쿠의 이야계곡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저자는 1970년대 도시화로 인해 우후죽순 생겨난 이 일대의 빈집을 백 군데 넘게 탐험한 뒤, 자신의 마음에 꼭 들어온 가로 네 칸, 세로 여덟 칸의 집을 구입한다. 오래된 톱, 바구니, 바가지 등 사소한 가재도구마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빈집에서 일본의 옛 모습이 묻어난다.
집에 남겨진 젊은 여성의 일기에선 도시화에 목말라 있던 일본의 상황이 잘 드러난다. 1950년대 조부모와 함께 살던 여성은 집 내부의 우울함과 어두움, 도시에 대한 동경을 글로 표현했다. 결국 여성은 가출을 선택하고, 조부모는 문에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부적을 거꾸로 붙인다. 인구 감소로 인해 농촌 곳곳의 슬럼화를 겪고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책은 단순한 외국인의 일본 탐방기가 아니다. 저자는 열두 살이었던 1964년 해군장교 아버지를 따라 처음 일본에 왔다. 일본의 옛 가옥에 매료된 저자는 미국 예일대에서 일본학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국학을 전공했다. 1977년부터는 가메오카시에 살며 동아시아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 이 책도 직접 일본어로 썼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최고 논픽션 작품에 주어지는 신초학예상도 받았다.
책은 서양인이 느끼는 일본에 대한 경외심과 비판, 빛과 어둠 등 양면을 고르게 담고 있다. 이야계곡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도, 동화 속 어두운 면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일본의 환경 파괴에 대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이제 세계에서 가장 추한 나라가 됐다”고 말한다. 또 “탑처럼 정교한 형식을 쌓은 일본은 사회가 순하게 굴러가는 모양새지만, 그 속에는 타인에 대한 짜증과 질시가 숨겨져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저자는 변해가는 일본의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애정을 가질 계기를 번번이 새롭게 발견한다.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를 만난 뒤 몇 년간 가부키 극장만 들락거렸고, 다도와 서예 등으로 관심사를 확장해 나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마다 귀신의 손가락이 나를 잡아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일본에 대한 그의 애착이 귀신의 손가락을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미술품 수집가가 된 과정도 설명한다. 처음 산 빈집을 민속박물관처럼 꾸미고,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았던 미술품을 싼값에 사 모은다. 값나가는 수집품을 사기 위해 지인들에게 갖고 있던 것들을 팔다 보니 어느새 미술품 거래상이 됐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아시아 미술에 대한 무관심 덕에 수집품을 늘려갈 수 있었다”며 한탄 섞인 너스레를 떤다.
일본을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게 여기는 한국인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에 대한 빛과 그림자를 차분히 정리해 나갈 수 있다. 일본의 사라져가는 전통을 붙잡고 싶은 묘사 가득한 문장은 읽고 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일본의 흔적을 일본인보다 깊게 따라가며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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