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대리전으로 세계가 주목했던 대만 총통 선거가 친미·독립 성향인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3파전으로 치러진 13일 선거에서 라이 당선인은 40.1%를 득표해 친중 성향인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33.5%)와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26.4%)를 제쳤다. 중국의 군사 위협에도 8년 주기 정권교체의 전통을 깨고 승리한 라이 당선인은 “세계 대선의 해 첫 번째 선거에서 대만은 세계 민주 진영에 승리를 안겼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친미 집권당에 대한 긍정 평가보다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가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라이 당선인이 총통 선거에선 이례적으로 과반 득표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날 함께 실시된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국민당에 1석 차이로 제1당 자리를 내줬다.
대만의 집권 여당이 안정적인 다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라이 당선인은 현 총통보다 더 반중(反中) 성향이 강하다. 중국이 유례없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총통 후보가 라이 당선인이다. 경기 침체와 내부 동요에 고심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내 결속을 노리고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거나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를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고조될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면서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최우선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중국이 ‘핵심 국가이익’이라 부르는 대만 문제에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유사시 대만에 군사 개입할 것을 밝혀온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달리 그런 언급 공개를 꺼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양안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으로 난조에 휩싸인 세계 경제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 대만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있고, 대만해협은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절반이 통과한다. 특히 중국이 대만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부품 핵심 원료인 광물 수출 제한 같은 초강수를 둘 경우 우리 기업에 공급망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미중 관계와 양안 관계의 변화를 마냥 위기로만 볼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TSMC의 빈틈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지정학적인 위기를 관리하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외교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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