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봐선 뻔하기 짝이 없는 말. 하나 10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있는 주 의사당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민주당 케빈 매카시 주 하원의원이 문화·체육위원회에서 한 법안에 찬성하며 내놓은 발언이었다.
‘AB734’란 이름으로 제출된 해당 법안의 골자는 간명하다. “12세 이하 아동의 미식축구 시합 및 연습에서 ‘백태클’을 금지한다”는 거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몸싸움으로 ‘땅따먹기’하는 스포츠에서 태클을 뺀다고?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반박이 거세지만, 찬성 측도 확고하다. 미 청소년스포츠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 해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미성년자는 대략 4000만 명. 이 가운데 약 1000만 명이 미식축구를 즐긴다. 그런데 이 인기 운동에서 해마다 2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다. 심지어 이건 머리 쪽을 다친 경우만 헤아린 숫자다.
게다가 지난해 미 보스턴대가 뇌질환으로 30세 이전 세상을 떠난 운동선수 152명을 추적 조사한 논문이 논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연구 결과, 41.4%가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이 원인을 초래했단 대목이 특히 그랬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들에게 CTE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달고 사는’ 병이다.
더구나 미국 사회는 어떤 경우라도 ‘아동 보호’는 가장 우선시해야 할 안건으로 여긴다. 태클 없는 미식축구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다른 종목에선 생경한 풍경이 아니다. 뉴욕포스트는 “미 축구협회는 10세 이하 어린이 축구 시합에서 ‘헤딩’을 금지했고, 아이스하키에선 13세 이하가 뛰는 경기에 ‘보디 체크(body check)’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웃 나라 캐나다가 2019년 12세 이하 미식축구 백태클을 금지한 것도 이들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실제로 이후 머리 부상이 4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플래그 풋볼(flag football·몸 접촉 없이 허리에 매단 깃발을 터치하는 변형 미식축구)’를 대안으로 삼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은 뭘까. 첫 번째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란 주장이다. 미 아마추어미식축구협회의 스티브 앨릭 회장은 “아이들과 부모는 자신들이 즐길 스포츠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그들이 원하는 건 ‘열정’이 넘치는 경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는 더 신념에 차 있다. “유서 깊은 고유 문화인 미식축구의 ‘정신’을 훼손하는 건 반(反)미국적(un-American)이기 때문”(뉴욕 지역지 브롱크스타임스)이란다. 앞서 여러 주들이 법 제정에 실패했던 전례도 불안 요소다. 뉴욕과 일리노이, 뉴저지, 메릴랜드, 매사추세츠주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전했지만 쓴맛만 봤다.
현지에선 아동 미식축구 논쟁이 ‘총기 소유 제한’과 붕어빵이란 왈가왈부가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 “미국에서 미식축구 선호도는 ‘정치적 성향’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짚었다. 캘리포니아 포함 백태클 금지를 추진했던 6개 주는 모두 민주당 우세 지역이다. WP는 “지난해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75%가 자녀에게 미식축구를 추천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44%만 긍정적으로 답했다”며 “미식축구를 둘러싼 ‘미국적 가치’ 논쟁은 이런 정치색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아동 미식축구 백태클 금지 법안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캘리포니아 역시 주 상원 통과와 주지사 서명이 남아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내게 아들이 있다면, 미식축구를 시킬지 ‘심사숙고해’ 결정할 것”이라 불을 지핀 뒤 미식축구 안전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역사는 되풀이될까, 또 다른 물꼬를 틀까. 10년 넘어 강산도 변하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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