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직후 필자는 양국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춘 칼럼을 썼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전달한 것 같지만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 등을 보낸 구체적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 사정에 정통한 당국자도 그때 “(러시아가) 민감한 기술까지 북한에 쉽게 내줄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을 초대한 것만으로 ‘포탄을 받은 답례’는 다 했을 거란 얘기였다.
4개월이 지났다. 지금도 당시 평가가 유효할까. 최근 다시 만난 이 당국자는 “상황이 훨씬 진지하고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북한으로부터 적당히 무기를 빼먹고 적당하게 성의를 표시하는 선에서 정리될 것 같던 북-러 군사협력이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고 밀도 있게 굴러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한 도발 시계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했다. 앞서 2차례 발사 실패 후 결국 궤도에 진입시켰다. 12월에는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고도 6000km 이상 고각(高角)으로 발사했다. 최근엔 고체연료 방식의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시험 발사하며 기습 타격 능력도 과시했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도발의 저편에 러시아의 그림자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한 정보 당국자는 “주변 눈치 안 보고 러시아에 펑펑 무기를 내줄 수 있는 국가가 지금 북한 말고 있느냐”며 “무기가 절실한 푸틴이 이젠 북한의 군사 기술 요청을 무시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100만 발 넘는 탄약을 공급받았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이 러시아에 탄도미사일까지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전방위적 무기 지원이 누적될수록 군사 기술을 내어 달라는 북한 요구를 러시아가 적당히 뭉개기 힘들 거라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을 얼마나 지원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부 탄도미사일이나 정찰위성 기술은 이미 이전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페이지다. 러시아가 북한의 최신 전투기, 핵추진잠수함 생산을 돕거나 핵 개발 관련 ‘게임체인저’ 기술까지 내준다면 우리 방위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섞인 시선을 즐기듯 북한 최선희 외무상은 최근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장 러시아의 군사 기술 이전에 대한 타임라인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조만간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필자는 앞서 쓴 칼럼의 마지막 대목에서 “푸틴을 방치해 두면 자칫 김정은에게 황금 열쇠를 쥐여줄 것”이라고 썼다. 북한의 무기 지원을 축으로 맺어진 북-러 밀월 관계는 그때보다 훨씬 깊고 끈적해졌다. 김정은과 푸틴의 손을 떼어놓을 수 없다면 러시아의 폭주를 막을 ‘원포인트’ 해결책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핵잠수함 기술 설명서를 쥐여주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