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언론 보도에서까지 부적절하게 쓰인 ‘지점’이란 표현을 보게 됐다. 존 플럼 미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정찰위성과 관련해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구절이다.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란 부분이 영어로는 ‘if there are things that enable their ability to do a war fight’로 돼 있다. 왜 ‘things’를 굳이 지점으로 번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기자들이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가 잇따르는 사태에 대해 묻자 “우려 지점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할 점’이라고 하면 될 것을 우려 지점이라고 해 어색했다.
▷지난해 말 방한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가 한 방송사 라디오 PD가 올린 영상을 보게 됐다. 지점이란 표현을 수차례 사용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적절하지 않았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그의 커리어가 가능했던 지점은 그가 전형적인 콩쿠르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의 지점은 이유라고 써야 한다. ‘30개의 곡(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의미)을 그냥 갖다 붙여놓은 것 같은 연주가 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런 지점들을 상쇄시키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의 지점은 그냥 점으로 쓰면 된다.
▷한 위원장은 51세다. 앞의 라디오 PD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50세로 나와 있다. 지점(地點)은 글자 그대로는 땅의 한 점이다. 흔히 사고가 난 지점과 같은 말을 쓴다. 출발 지점, 도착 지점이라는 말도 쓴다. 사실 이런 말만 해도 ‘지’를 빼고 출발점, 도착점이라고 쓰면 된다. 그러나 거꾸로 언제부터인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포인트(point)할 만한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까지 지점이란 표현을 마구 갖다붙이는 버릇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더니 이제는 젠체하는 50대들까지도 무반성적으로 그런 말을 쓰고 있다.
▷이제 상당수가 60대가 된 ‘86세대’들은 부분이란 표현을 유행처럼 사용했다. 지금도 그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독일 헤겔 철학에서 전체와 부분의 동일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표현이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쓰이다가 1980년대 운동권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그런 부분’은 ‘그런 점’ 혹은 ‘그런 측면’으로 해도 부족할 게 없고 오히려 더 적절하다. 요새 ‘지점’의 용례는 ‘부분’의 용례보다 훨씬 부적절해 보인다. 언어를 무반성적으로 쓰면 내가 말하지 않고 말이 말을 하게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