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의 민간 임대아파트 ‘유은센텀시티’는 지난해 8월 공사가 중단된 뒤 시공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공정률이 50% 수준에서 현장이 멈춰선 것이다. 지난해 10월 예정이던 입주 날짜는 올해 3월로 연기되며 입주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분양 계약자 약 126명이 보증금을 1억 원씩 납부한 상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대보증금 반환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건설업계 자금난이 입주 예정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양보증 또는 임대보증 사고는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4일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살이 돋으려면 굳은살을 벗겨내야 한다”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리에 속도를 낼 것을 시사했다. 분양시장 냉각으로 지방 영세 건설사들의 ‘줄도산’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 및 금융권의 건설업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 업계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24일 종합건설사 28곳을 포함해 건설사 290곳이 폐업 신고를 했다. 지난해 건설업 폐업 신고(2347건)는 전년보다 23% 증가했는데, 올 들어 규모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부도 건설사 수는 21곳으로 전년(14곳)보다 50% 늘었다.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도 지난해 12월 11곳, 올해 1월 10곳에 이른다.
건설사 폐업과 부도로 각 사업장의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전국의 분양(12건)·임대보증 사고(3건) 금액은 총 9445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사고 금액 57억 원에 비해 165배 늘었다.
분양 시장도 좀처럼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1만465채로 지난해 초(7546채) 대비 38% 늘었다.
악성 미분양이 계속되며 아예 공매에 부쳐지는 사례도 나왔다. 대구 수성구 146채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빌리브 헤리티지’ 121채가 30일 공매에 나올 예정이다.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며 해당 단지 시행사가 14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PF 대출 상환에 실패한 것이다. 시공사인 신세계건설도 공사대금 436억 원가량을 받지 못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2022년 10월부터 분양에 나섰지만 결국 미분양을 해소하지 못했다”며 “유찰이 반복되면 채권자인 금융권과 시공사 모두 대출금이나 공사대금을 회수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속도감 있고 강도 높은 부동산 PF 부실 정리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어 건설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놓였다. 이 원장은 “기존에 말한 것보다 훨씬 강도 높게 (부동산 PF 사업장) 정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일부 금융사나 건설사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에 충분한 충당금 적립도 요구했다. 그는 “일부 회사의 리스크 관리 실패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도 “단기 성과에 치중해 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이나 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5∼15% 수준인 PF 시행사의 총 사업자금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최소 20%가 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원장은 “오히려 100% 가까이 자기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행 부동산 PF 제도를 두고 “우리나라는 대출을 일으켜 땅부터 사다 보니 분양가격이 폭락하면 줄줄이 ‘폭망’하는 구조”라며 부동산 PF 제도 개선을 시사한 바 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PF 사업장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적어도 상반기까지 시행사나 시공사 모두 자금상 힘든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 금리 인하가 이뤄지면 숨통이 조금 트일 가능성도 있지만 분양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여전히 힘든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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