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힘[이은화의 미술시간]〈303〉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4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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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좋은 관계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 윌리엄 체이스가 그린 ‘친절한 방문(1895년·사진)’은 좋은 대화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실내, 잘 차려입은 두 여인이 소파에 앉아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있다. 그림 속 배경은 체이스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롱아일랜드의 작업실이고, 모델은 그의 아내 앨리스와 방문객이다.

손님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에 분홍 양산을 들었다. 머리에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와 얼굴 전체를 가리는 얇은 베일을 썼다. 긴 소파에 앉은 그녀는 몸과 머리를 앨리스에게 향하며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노란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도 몸을 돌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바닥에 얼룩덜룩 묻은 자국과 뒹구는 쿠션들을 치우고 차를 내와야겠지만 지금은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테다. 그녀 뒤의 큰 거울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반대편 실내 모습을 비춘다. 일상적인 소재, 빛의 표현, 밝은 색채, 유려한 붓질 등 인상주의 미술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림이다.

실제로도 체이스의 화실에는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았다. 그림 속 손님도 초상화를 의뢰하러 온 고객일 수 있다. 수완 좋은 사업가의 아들이라 그런지 체이스는 유럽에서 활동할 때도, 귀국해 뉴욕에서 작업실을 열었을 때도 늘 미술계 무리의 중심에 있었다.

그림만 뛰어나다고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체이스는 성실한 화가이자 열정적인 교육자였고, 뛰어난 매너와 패션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의 작업실은 제자와 예술가, 패션피플들의 아지트였다. 게다가 앨리스처럼 진심으로 들어주는 화가 가족이 있다면 누구든 찾아가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경청도 그의 성공 전략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경청#친절한 방문#인상주의 화가#윌리엄 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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