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근로자 수가 5∼49명인 83만7000여 곳의 자영업·중소기업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적용된다. 적용 시기를 2년 미루는 법률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형사처벌 등을 받는 리스크를 영세 기업들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맞게 됐다.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할 경우 다음 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부와 국민의힘, 경영계는 영세 기업 90% 이상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적용을 유예하자고 야권을 설득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유예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정부의 사과, 구체적 재해예방 계획, 2년 뒤 시행 약속 등은 대부분 충족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막판에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민주당이 다른 이유를 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동계는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유예 없는 적용을 주장해 왔다.
영세 사업장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적용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음식점, 빵집, 커피전문점 주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역시 새로 포함되는 공사비 50억 원 미만 건설현장들은 안전관리 책임자를 둘 여력이 없다며 자포자기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받을 수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고, 사설 컨설팅을 받으려면 1000만 원 이상 든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업체들이 직원을 해고하거나,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직원 수 5명이 넘는 사업주 중에서 직원 수를 4명 이하로 낮춰 사법 리스크를 피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청년보다 건강이 안 좋고, 사고 회피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 근로자가 먼저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망 사고 등으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고 폐업할 경우 일터를 잃는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영향권 안에 있는 근로자가 800만 명이다.
2021년 제정 때부터 중대재해법은 과도한 처벌 규정,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그 후 3년간 정부가 법률 재정비, 대비책 마련을 게을리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당장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근로자 일자리를 없앨 법이 시행되도록 방치하는 정치권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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