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시민단체 주도 2004년 건립
우익 반발에 법원서 철거요청 수용
“우익단체 역사 지우기 확산 우려”
“추모비에 새겨진 기억, 반성, 우호라는 말이 이상합니까?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28일 오후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
일요일 오후 한적한 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군마현은 이곳의 조선인 추도비를 철거하기 위해 이날 오후 5시 반부터 공원 일시 폐쇄에 나섰다.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철거를 촉구하는 우익 세력이 이날 오후 추도비 인근에 모여들며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이 마지막으로 추도비를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을 에워싼 가운데, 우익 세력들은 확성기를 틀어 “뭐 하는 거냐” “당장 나가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군마현 주민인 40대 남성 하라다 씨는 “여기에 조용히 있는 추도비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추도비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며 “군마현이 굳이 철거하겠다니 이런 쓸데없는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왔다는 마쓰모토 씨는 “강제연행이라는 말은 교과서에도 기재된 역사적 사실”이라며 철거에 나선 군마현을 비판했다.
군마현 추도비는 지역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2004년 ‘군마의 숲’ 내에 세워졌다. 과거 일본 육군 화약공장이 있던 곳으로, 1974년 시민공원으로 개장했다. 추도비에는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힌 역사 사실을 깊이 기억에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여 (중략)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바란다”고 쓰여 있다.
논란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추도 모임에서 “강제연행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발언을 일본 우익 세력이 문제 삼았다. 군마현은 추도비 설치 허가를 내주면서 ‘정치적 행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는데 이 발언으로 약속을 어겼다는 게 우익 주장이었다. 군마현은 이들 주장을 인정해 연장 설치를 불허했고 재판 끝에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지방자치단체 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군마현의 철거 요청을 시민단체가 거부하자 ‘행정 대집행’으로 이날 철거에 들어갔다.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계기로 일본에 있는 여러 관련 추도시설들에 우익 단체들이 끈질기게 시비를 걸며 ‘역사 지우기’가 자행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군마현이 추도비 철거를 대신 집행하는 것은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하는 역사 부정론자의 혐오 발언, 혐오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유명 팝아티스트 나라 요시토모 등 예술가 4300여 명은 철거에 반대하는 서명을 모아 군마현에 제출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