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종종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된다. 7세와 5세인 두 딸은 두어 살 즈음부터 ‘엉뚱발랄 콩순이’로 시작해 ‘시크릿 쥬쥬 별의 여신’, ‘캐치티니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았고 최근에는 ‘미라큘러스’, ‘슈퍼히어로걸스’ 등 외국 애니메이션을 섭렵 중이다. 조작법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몰래 부모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가져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해 만화를 튼다. 윽박과 체념을 오가다가 “보게 놔두자”, “그만 틀어주자” 하며 결국 아내와 싸우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육부가 디지털 인공지능(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하는 걸 보면 기분이 착잡하다. 교육계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에듀테크(교육+기술) 열사’로 통한다. 이 부총리의 역점 사업으로 내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일부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된다. 학생들은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PC를 들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옹호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서 첨단 기술을 일찍 접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수업에 필요한 태블릿PC를 정부가 모든 학생에게 나눠주기 때문에 가정 형편의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지는 걸 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잃는 건 없을까. 연필과 종이책의 감촉,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습관, 교과서와 문제집 한 권을 마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책거리, 필기구와 노트를 고르는 취향, 엄마 아빠와 서점에서 참고서 등을 고를 때의 망설임과 설렘. 이런 것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줄 수 없는 경험이고 자극이다.
게다가 학교 수업은 지식 전달을 넘어 일생에 중요한 기억이자 추억이다. 선생님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옆 친구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고, 친구의 가방 속과 노트 필기를 관찰하며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배우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머잖아 아이들은 똑같은 태블릿PC만 뚫어져라 보며 수업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이 시험도 필기도 숙제도 태블릿PC로 하게 될 것이다.
반면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종이책과 필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소는 “디지털 기기가 학습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도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과 수학 점수가 반비례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어차피 성인이 되면 원치 않아도 사방에서 ‘까톡!’거리는 디지털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한 살이라도 일찍 디지털로 내몰아야 할지, 종이와 연필의 아날로그 경험을 지켜줘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에듀테크 열사 이 부총리에게 소설가 김훈의 글을 하나 전하고 싶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김훈 ‘연필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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