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악용되는 ‘자사주 마법’ 차단”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인적분할시 자사주 신주배정 금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위해 추진
“자사주 소각 빠져 반쪽” 지적도
재계 “경영권 방어수단 없어” 우려

앞으로 기업의 대주주들이 자기주식(자사주)을 활용해 지배력을 편법으로 강화하는 통로가 막힐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기업의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 금지를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의 관심이 쏠린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은 결국 제외돼 ‘반쪽짜리 대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 ‘자사주 마법’ 사라진다


금융위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상장법인 자사주 제도 개선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자사주 제도가 선진국과 달리 대주주 지배력 확대 등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기업 인적분할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사주란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해 보관 중인 주식을 뜻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사주 취득 후 소각’이 주주 환원책으로 대두되면서 국내에서도 1992년부터 상장사를 중심으로 자사주 취득을 단계적으로 허용해 왔다.

하지만 기업들이 대주주 지배력 확대,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자사주를 취득한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당초 취지에 역행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주주환원율은 연평균 29%로 중국(31%)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는 기업의 지주회사 전환 시 인적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 발생해 온 점을 지적했다. 인적분할로 지주사와 사업 회사로 쪼개지면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가 분할 비율만큼 지주사로 넘어가고, 동시에 지주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사업 회사의 신주(새로 발행되는 주식)로 전환된다. 의결권, 배당권 등의 주주권이 없는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면서 대주주가 별도의 출연 없이 사업 회사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인적분할에 대한 법령, 판례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대주주들은 계속해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자사주를 활용해 왔다.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 CJ, LG, GS, OCI 등 굵직한 대기업의 오너들은 지주회사, 계열사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자사주 카드’를 써 왔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진작에 막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앞으로 상장사의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기로 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또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보유, 처분 등에 대한 공시가 의무화된다. 기업의 자사주 처리 계획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빠져


일각에서는 이날 발표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제외된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까지 마쳐야 주주 가치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의견 수렴 과정에서 기업이 난색을 표해 관련 내용이 아예 빠졌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마다 자사주를 남용하는 방식이 다양해 소각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자사주 소각을 기업의 자율로 맡기고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재계 안팎에선 자사주 외엔 사실상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는 점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경영권 보호 수단이 사실상 자사주 하나밖에 없는데, 기업들이 적법한 수단을 이용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에 대해 이를 ‘악용’한다고 보는 것은 시각 자체가 잘못됐다”며 “‘자사주 마법’은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사주만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주주#지배력 강화#자사주 마법#차단#인적분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