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대 위에 한 남자가 나체로 누워 있다. 관중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사형 집행인들은 능수능란하게 그의 피부를 벗겨내고 있다. 사지가 결박된 남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대체 그는 누구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끔찍한 형벌을 받는 걸까?
‘시삼네스의 박피(1498년·사진)’는 15세기 벨기에 브뤼허에서 활동했던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의 대표작이다. 선명한 색채와 생생한 묘사, 고객의 요구를 잘 반영한 그림으로 유명했던 그는 40세 무렵부터 브뤼허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이 그림은 브뤼허 시의원들이 의뢰한 것으로 브뤼허 시청에 걸기 위해 제작됐다. 화면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 2세의 심판 장면이 묘사돼 있다. 사형대에 누운 남자는 부패한 왕실 판사 시삼네스다. 그는 뇌물을 받고 거짓 판결을 일삼았다. 이를 알게 된 왕은 그를 즉각 체포해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 다음 그의 살가죽을 재판관의 의자에 씌우게 했다. 왕은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후임 판사로 임명하면서 부패한 판사의 결말을 항상 명심하고 공정하라고 경고했다. 오른쪽 배경에 살가죽으로 덮인 의자에 앉아 있는 이가 바로 오타네스다.
다비트는 고대 이야기를 다루면서 배경 건물과 인물들의 옷을 그 당시 브뤼허에서 유행하던 스타일로 그렸다. 바닥에 떨어진 시삼네스의 붉은 옷도 벨기에 법관들의 공식 예복이다. 오른쪽 사형 집행인들 사이에는 어린 소년도 있다.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는 소년은 이 현장의 증인에 미래 세대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화가는 고대 이야기를 자신이 살던 시대와 연관 지어 표현했다.
끔찍한 장면이지만 이 그림의 목적은 분명하다. 법관의 부정이 사회 근간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임을 후대에까지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15세기 그림이 묻는 듯하다. 사적 관계든 돈 때문이든 직업윤리를 내팽개친 오늘날의 권력자나 법관들은 과연 어떤 처벌을 받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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