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세가 당초 정부 예상보다 56조4000억 원 덜 걷혀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현실화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연간 국세 수입이 344조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어제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본예산에서 잡았던 세입보다 56조4000억 원 적은 것으로,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경기 침체와 자산시장 위축 등의 여파로 지난해 교육세를 제외한 모든 세목에서 세수가 줄었다. 반도체 불황으로 작년 제조업 생산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문제는 올해 상황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국세가 정부 전망치보다 6조 원가량 덜 걷힐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투자 등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부동산·주식시장 회복도 더딘 탓이다. 정부가 예산 지출을 최대한 줄인다고는 하지만, 실질적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92조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현금성 지원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어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경기 수원시를 찾아 전국 주요 구도심의 철도를 지하화하고 상부 공간을 통합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한 위원장은 재원 규모를 밝히지 않은 채 “민간 투자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녀 출산 시 목돈을 분할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비 일체를 무상화하는 ‘출생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재원은 향후 마련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야 모두 막대한 재원 규모도, 재원 조달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 답이 없는 셈이다. 여야가 의기투합해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밀어붙이는 SOC 사업도 한둘이 아니다. 국회는 지난주 ‘대구∼광주 달빛철도 건설’을 특별법으로 통과시켰고 20조 원 규모의 ‘수원 군공항 이전’, 부산·울산·경남의 ‘동남권 순환광역철도’ 등 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법안도 줄줄이 심사 중이다. 지역 표심을 노린 ‘묻지 마’ SOC 사업이 줄잡아 90조 원에 육박한다.
나라 곳간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과 선심 입법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1100조 원을 넘어선 나랏빚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웃돌고, 재정 적자는 내년 GDP의 3%를 넘어선다고 한다. 재원 대책도 없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총선용 사탕발림 공약들은 미래 세대에게 빚 폭탄을 떠넘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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