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불완전판매로 손해 발생”
다른 투자자들도 조정신청 계획
은행 “판매과정 녹취” 대형로펌 선임
금감원, 이번주까지 현장 조사
올해 들어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이 본격화된 가운데 개인투자자가 시중은행의 불완전판매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분쟁조정을 처음으로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투자자들도 조정 절차를 준비 중이어서 결렬 시 집단소송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다음 달까지 주요 ELS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검사하고, 사례가 확인되면 배상 기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ELS 첫 분쟁조정… 결렬 시 소송전 예고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투자자 A 씨는 이날 ‘ELS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분쟁조정을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신청했다. B 시중은행에 2억79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홍콩H지수 ELS가 불티나게 팔린 2021년 이후 투자자가 직접 분쟁조정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씨뿐 아니라 16명의 개인투자자도 투자 금액, 경위, 가입 절차 등을 정리한 뒤 분쟁조정을 순차적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로집사법률사무소에 따르면 A 씨를 포함한 17명의 ELS 투자 금액은 총 35억 원이었다.
이정엽 로집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가능성을 고려해 투자금 전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했다”며 “아직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분들이 많은데 손실률이 50% 이상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투자자들은 은행들이 ELS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정보 제공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 특성상 외국인·기관투자가 비중이 높은데도 거래 규모와 변동성이 큰 이유를 안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소비자의 투자 성향에 부적합한 상품 가입을 권유한 점도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은행권은 ELS의 경우 불완전판매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21년 도입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맞춰 ELS 판매 과정을 녹취 중이고, 고령 투자자에 대해선 투자성향 분석 등의 기록까지 남겨뒀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분조위의 조정 결정은 법적 의무가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조정을 신청한 투자자들이 조정 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소송전(戰)으로 번질 수 있는 것이다. 법률대리인 역시 시중은행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이다. 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 등 4대 시중은행은 고객 손해배상 요구 등과 관련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잇달아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하고 있다.
● 불완전판매 여부·배상기준 내달 나올 듯
금감원은 이번 주까지 주요 ELS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뒤 불완전판매 입증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이달부터 6월 말까지 총 8조4000억 원 규모의 홍콩H지수 ELS 만기가 예정돼 있어, 배상 기준을 빠르게 마련해야 투자자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은 다음 달 중 불완전판매 검사 결과, 판매사별 배상 기준안 등을 차례대로 발표하기 위해 판매사 검사 현장에 분쟁조정 담당 인력도 파견해 둔 상태다.
다만 금감원 내부에선 배상 대상과 기준을 어떻게 산정하느냐를 두고 고민이 깊다. 라임 등의 사모펀드 사태 때와 달리 ELS 상품 자체의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H지수 ELS 판매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15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2019년 은행권의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사태 당시 감사원이 감사 청구를 받아들인 바 있어 감사 결과에 따라 시정조치까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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