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협상” 7개월 허비
산은, 영구채 등 공정성 논란 자초… 해진공은 세세한 조건 소모적 협상
경영 주도권 이견 못좁혀 끝내 불발
당분간 HMM 재입찰 어려울듯
국내 유일의 컨테이너선사 HMM(옛 현대상선)의 매각이 끝내 무산됐다. 매각 측인 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채권단)와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하림)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거래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물론 매각 무산 과정을 지켜본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아마추어 협상 같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채권단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유력한 인수 후보군을 초청하는 데도 실패해 시작부터 설익은 딜(deal·거래)이었다는 것이다. 국내 해운업계 재편이 시급한 상황에서 약 7개월 동안 입찰을 진행하며 시간을 허비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 채권단-하림, 동상이몽 이어져
7일 채권단은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7주간 협의해 왔으나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진 못했다. 이날 하림도 “거래 협상이 무산된 데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채권단과 하림은 매각 이후 HMM의 경영 주도권을 놓고 막판까지 대립했다. 우선 채권단은 하림이 HMM의 유보금(약 10조 원)을 해운업 발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HMM이 국내 유일한 국적 선사인 만큼 정부 측이 사외이사로 합류해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HMM이 또다시 어려워지면 혈세 투입이 불가피해 정부 측이 관리, 감독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하림은 채권단이 약 10%의 지분을 남겨두고 경영에 계속 간섭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받아쳤다. 채권단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는데도 ‘관치’ 기조로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하림 고위 관계자는 “협상에 몇 차례 임하면서 ‘무늬만 매각’이란 생각이 끊이지 않아 굴욕적이었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비싸게 지불하고 사는데, 채권단이 영구적으로 간섭하는 입장을 고수하면 누가 인수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양측은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와 관련해서도 엇갈리는 입장을 보였다. 하림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 특성을 고려해,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에서 JKL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해진공이 반대하자 하림은 JKL의 지분 매각 제한 기간을 3년으로 줄여 달라고 최후 통첩을 건넸다. 그러나 해진공은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입장과 함께 JKL을 컨소시엄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고, 하림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반발하면서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 산은-해진공 입장 차 커 재입찰도 난항
이번 매각이 무산되면서 HMM은 당분간 채권단 관리 체제로 유지된다. 채권단은 HMM의 재입찰을 최대한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거래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채권단의 이 같은 계획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다른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당장 7주간의 주주 간 계약 협상 과정에서 산은과 해진공의 의견이 합치하지 않는 경우가 계속 반복됐다”며 “양측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HMM 매각이 무산된 데에는 관계 기관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산은은 영구채 물량이 남아 있는데도 입찰 공고상에 관련 내용을 명확히 담지 않아 시장의 빈축을 샀다. 결국 본입찰 과정에서 동원과 하림이 정반대의 계약 조건을 내놓는 상황으로 이어져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해진공은 전 세계 해운업의 재편 국면에서 빠른 결정이 필요한데도 지나치게 세세한 조건들을 요구하며 소모적인 협상을 이어갔다. 하림은 팬오션 유상증자(약 3조 원), 인수금융(약 2조 원) 등의 자금 조달 계획을 내놨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자금 부족 우려를 온전히 해소하진 못했다.
한편 이번 매각 무산에 대해 HMM의 육·해상노조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HMM 노조는 자금력이 약한 하림이 인수하면 회사 유보금이 해운업 발전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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