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플랫폼’ 규제법 무기한 연기
美 반발 후 통상마찰 가능성 제기
일부 “총선 앞 여론악화 우려” 해석
“공정위 무리한 입법 강행” 지적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 경촉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한 데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부담이 된다는 여권의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강한 반발과 미국과의 통상마찰 우려로 논란이 커진 상황에서 여권에서도 반대 기류가 나오자 공정위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1년 넘게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논의해 온 공정위가 구체적인 법안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명확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아 혼란만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내부적으로 충분히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조급하게 입법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 “표심에 해가 될 수 있는 법”
7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5일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플랫폼 경촉법의 주요 내용을 공유했다. 플랫폼 경촉법의 세부안을 둘러싼 관계 부처 조율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해 법안 발의를 위해 국회를 찾은 것이다. 당초 공정위는 플랫폼 경촉법을 빠르게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 입법 형식으로 법 제정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부정적인 기류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플랫폼 경촉법에 대한 IT업계의 반발이 거센 만큼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추진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당이 플랫폼 경촉법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 표심에 도움은커녕 해가 될 수 있는 법인 만큼 공정위와 실무협의를 했다고 보여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는 방식의 규제 도입 필요성 또는 시급성이 분명하지 않고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성장 기회를 포기하도록 유인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에서 플랫폼 경촉법에 대한 반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공정위의 부담을 키웠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최근 성명을 내고 “플랫폼 경촉법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쟁을 짓밟고, 선량한 규제 관행을 무시하며 외국 기업을 임의로 표적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입법 전에 미 재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공정위는 “원전 재검토와 통상 이슈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 깜깜이 논란 키우는 공정위
지난해 1월부터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방안에 대해 논의해 온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플랫폼 경촉법 제정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법안의 주요 내용은 두 달 넘게 공개되지 않아 업계에선 “깜깜이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구글, 애플 등 사전 규제 대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기업들은 플랫폼 경촉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위와의 간담회 자리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이날 “지금 단계에서 법안을 공개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당장 공표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대안을 검토한 뒤 정리가 되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했다. 명확한 대안도 없이 ‘전면 재검토’ 입장만 내세우면서 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가 졸속으로 입법을 강행하다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는 부처 간 공감대가 있었지만 디테일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었다”며 “이달 안에 정부안을 발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플랫폼 경촉법 추진이 백지화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독과점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면서도 업계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한 ‘전략적 숨 고르기’”라며 “입법 계획 자체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전 지정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원안대로 사전 지정을 포함해 입법에 나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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