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 ‘간판 스타’ 강미선-손유희 수석무용수
‘코리아 이모션 정’ 16일부터 공연… 마지막 호흡 맞춘뒤 다른 길로
혹독한 연습 함께하며 서로 의지
“덤덤한 마음으로 무대 오를래요”
20년 전, 될성부른 떡잎으로 만난 두 발레리나는 인생의 절반을 서로 의지하며 무성한 나무가 됐다. 같은 배역을 번갈아 퐁당퐁당 연기하던 20대 시절, 연습이 유난히 혹독했던 날엔 밤하늘에 대고 한탄하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각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뒤엔 “너희 딸 타고난 춤꾼이야” 하며 수다를 떨다가도 발가락이 문드러지도록 춤추며 변치 않는 기량을 뽐냈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두 수석무용수 강미선(41)과 손유희(40)의 이야기다.
UBC의 두 ‘간판 스타’가 16∼1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코리아 이모션 정(情)’에서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춘다. 손 씨는 이번 무대를 끝으로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하고 후학 양성의 길을 걷는다. ‘코리아 이모션’은 클래식 발레에 한국무용을 접목한 창작발레로 정과 한(恨) 등 한국적 감정을 표현한 9편의 짧은 춤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강 씨에게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 무용수 사상 5번째로 안겨준 작품이다. 7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일곱 살에 발레를 시작한 베테랑 무용수들이지만 ‘코리아 이모션’은 “조금도 안주할 수 없는” 무대다. 발레는 동작이 무용수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달리 한국무용은 주로 안쪽을 향한다. 손 씨는 “등은 굽고 골반은 여는 식의 꼬인 동작을 하니 몸이 아프기 일쑤”라며 “여성 4인무인 ‘달빛 유희’는 큰 동작 없이 잔잔하게 8분을 추는데도 모두 숨을 헉헉 몰아쉰다. 뻗어내는 동작 없이 호흡을 끌어올리기만 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역경은 끌림을 줬다. 강 씨는 “그리움 등 정서를 서사 없이 표현해야 해 까다롭지만 어떻게 표현력을 극대화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크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두 사람은 서로 보고 배우며 ‘엄마 발레리나’까지 함께 성장했다. 손 씨는 “2004년 입단 전부터 미선 언니가 엄청나다는 소문을 듣고 오래도록 지켜봤다. 나처럼 춤만 추면 싱글벙글 웃는 여섯 살배기 딸이 난생처음 본 발레리나도 미선 언니”라며 “‘코리아 이모션’은 몸 상태와 심경에 따라 매일 달리 표현돼 고민인데 언니는 그마저 컨트롤한다”고 했다. 강 씨는 “나와 달리 유희는 억지로 힘을 쓰지 않고도 발끝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렬하다. 특히 ‘미리내길’을 출 땐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고 추켜세웠다.
‘미리내길’은 이 공연의 백미이자 두 사람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푸른 달빛 아래, 지평권이 작곡한 동명 노래에 맞춰 죽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음을 그리는 남녀 2인무다. 인생의 질곡을 거치고서야 새겨지는 한의 정서는 두 사람의 연륜으로 물감처럼 풀려나온다. 강 씨는 “사방을 둘러보는 동작이 있는데, 밖이 아니라 거울로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에도 춤을 놓지 않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어 손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리내길’만 추면 이성을 잃을 듯 빠져들어요. 살면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 차가운 병상에 실려 수술실에 출산하러 들어가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나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각각 고별 무대, 트로피를 쥐여준 무대라는 중압감이 있지만 두 사람은 “긴장되기보단 설렌다”고 입을 모았다. 손 씨는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오르려 노력 중”이라며 “앞으로의 인생에도 발레가 함께할 것이기에 ‘완전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강 씨는 차분한 미소로 이처럼 말했다.
“올해 첫 작품으로 다름 아닌 ‘코리아 이모션’ 무대에 올라 행복해요. 작년에 못 보신 분들, 이미 보신 분들도 와주실 거란 기대도 있고요. 저번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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