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족을 떠난 아버지… 그의 삶 들여다보며 마주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7일 01시 40분


전쟁 중 사망한 줄로 알았던 부친… 알고보니 다른 가족 꾸리고 살아가
노년의 심리학자, 아버지 삶 추적
한 인간 이해하며 깨닫게 된 것들
◇아버지의 마지막 골프 레슨/윌리엄 데이먼 지음·김수진 옮김/344쪽·1만8800원·북스톤

‘아버지의 마지막 골프 레슨’ 저자의 아버지가 골프를 치는 사진. 저자는 “아버지가 골프를 치는 사진을 발견한 뒤 상상 속에서 아버지와 골프를 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냈다”고 말한다. 북스톤 제공
‘아버지의 마지막 골프 레슨’ 저자의 아버지가 골프를 치는 사진. 저자는 “아버지가 골프를 치는 사진을 발견한 뒤 상상 속에서 아버지와 골프를 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냈다”고 말한다. 북스톤 제공
“아빠, 이런 얘기 전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어느 날 60대인 저자는 딸에게 전화로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딸은 인터넷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중 전사한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유럽 등에서 일하며 프랑스 발레리나와 결혼해 세 딸을 뒀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알아냈다. 저자는 딸과 전화를 끊은 뒤 이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딸의 전화를 받은 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닌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1944년생으로 올해로 80세다. 청년기를 지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때에 오히려 아버지의 인생을 찾아간 점이 흥미롭다. 숨겨진 아버지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은 추리소설처럼 펼쳐진다.

생전 어머니는 저자에게 “아버지는 전쟁 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집에는 아버지의 사진 한 장 없었다. 저자도 사실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소년은 롤모델을 찾고, 배우고, 반항하는 복잡한 노력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자의식을 구축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아버지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조사 결과 아버지는 전쟁 중 죽지 않았다. 아버지는 1942년 미군 정보부대에 입대해 2년간 유럽 전선에 배치된 뒤 1944년 영국에 있는 미군 구치소 임시 교도관으로 발령받았다. 하룻밤 병영을 무단 이탈하는 등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미군 병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전후 이 구치소에서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장교와 병사 교도관들이 조직적으로 수감자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고, 강제로 뛰게 하는 등의 가혹 행위를 벌인 것. 저자의 아버지는 이와 무관해 처벌받지 않았지만, 법정에서 동료들의 행위를 증언하며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해야 했다.

1946년 제대한 아버지는 미 육군성에 민간인 직원으로 취업했다. 이후 독일, 태국에서 일하며 전후 미군의 복구 활동에 참여했지만 집으로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91년 세상을 떠났다.

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저자는 군 기록을 토대로 아버지가 재판을 거치며 전쟁에 대한 혐오를 느꼈다고 추정한다. 또 이 때문에 미군이 전후 세계 질서를 복구할 때 자신의 힘을 보태고 싶어 했을 거라고 봤다. 물론 학창 시절 응석받이였던 아버지가 책임감이 부족했을 거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건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없는 삶을 원망하고, 늘 불행했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는 것.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부모를 바라보면서 늘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는 게 아닐까.

#가족을 떠난 아버지#진실#아버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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