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입자물리연구소서 개발 주도
10배 강력한 힘으로 입자 충돌
우주 탄생 직후 상황 재현 가능
우주 탄생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한 ‘역대급’ 입자가속기 개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구축해 ‘신의 입자’로 불린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개발을 주도하고 200억 유로(약 28조6406억 원)가 투입되는 차세대입자가속기(FCC)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가 중간 결과를 통과하면서다. FCC는 기존 최고 성능의 가속기보다 10배 강력한 힘으로 입자를 충돌시킨다. 더 큰 에너지로 우주 탄생 직후 상황인 빅뱅을 실제와 더욱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 ‘21세기 후반 물리학을 책임질 가속기’가 등장하게 될지 물리학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18일 CERN에 따르면 CERN의 위원회는 차세대입자가속기 개발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달 초 열린 회의에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중간 결론을 도출했다. 회의를 주도한 엘리제 라비노비치 위원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차세대입자가속기가 들어설 위치와 건설 방법을 확인한 결과 개발을 중단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타당성 조사는 2027년 완료된다. 개발 계획이 최종 통과되면 2030년대 중반 건설이 시작되고 2045년경에 첫 가동이 이뤄진다. 현재 계획은 2070년대까지 운영하는 것이지만 CERN은 입자가속기에서 이뤄지는 연구 성과에 따라 세기말까지 연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차세대입자가속기 운영은 총 2단계로 계획됐다. 1단계에선 전자와 양전자를 충돌시켜 힉스 입자를 대량 생성하고 그 성질을 정밀하게 측정한다. 2단계는 양성자빔을 가속해 100TeV(테라볼트) 에너지로 입자를 충돌시키고 여기서 발생한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다. 이 밖에 양성자를 강한 힘으로 충돌시켜 간접적으로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실험도 예정됐다.
차세대입자가속기는 현대 물리학의 진전에 꼭 필요하지만 생성이 까다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힉스 입자는 입자물리학에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인 쿼크와 렙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행동하는지 설명하는 표준모형의 근거다. 표준모형이 예측하는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실험이 줄을 서고 있지만 만들어지는 힉스 입자의 양은 부족한 실정이다. 빛을 내거나 반사하지 않지만 중력의 영향을 받는 암흑물질은 우주에너지의 27%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 과학기술로도 정확한 정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차세대입자가속기는 기존 입자가속기의 성과를 넘어설 장치로 여겨진다. 차세대입자가속기의 동생 격인 거대강입자가속기는 앞서 2012년 세계 최초로 힉스 입자를 발견해 미시 세계 현상에 대한 연구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힉스 입자의 특성을 갖는 새로운 아원자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암흑물질 검출 실험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거대강입자가속기 둘레의 4배인 91km에 이르는 차세대입자가속기는 그 크기에 비례해 훨씬 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보다 양과 질적 측면에서 우수한 물질을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차세대입자가속기가 까다로운 조사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막대한 예산 때문만은 아니다. 전례 없는 고에너지를 운용하는 장치가 환경에 미칠 영향을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하 200m에 구축되는 입자가속기가 지질학적으로 미칠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입자가속기 프로젝트에는 한국 연구자들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차세대입자가속기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2019년 출판된 가속기 및 검출기 개념 설계 보고서에 한국 연구진의 디자인 설계 연구 결과가 포함됐다. 현재 시뮬레이션 및 프로토타입 제작 연구 등을 주도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