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급할 때만 찾는 ‘진료보조(PA) 간호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0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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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투입하겠다고 하자마자 대한간호사협회가 “사전 협의된 바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지난해 5월 간호법 사태 이후 의사와 간호사 간 골이 깊은데도, 간협이 의사 파업을 거드는 듯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정부 지시대로 대체 인력으로 일했다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의사들로부터 고발당했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를 대리하는 PA 간호사의 업무는 불법이다. 4년 전 환자 곁을 지켰다가 봉변을 당한 간호사들은 이번에는 “간호사에 대한 보호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의 동원령에 발끈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떠난 병원에선 의사 업무가 간호사에게 물밀듯이 넘어오고 있다고 한다. 의료 현장에선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는데 혹시라도 환자가 잘못되면 불법을 추궁당할까 두렵다”고 아우성이다.

▷PA는 주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의사들조차 “PA가 없으면 수술실이 마비된다”고 할 정도로 관행이 됐다. 다만 존재 자체를 ‘쉬쉬’하다 보니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진 않는다. 주로 의사들이 기피하는 외과나 흉부외과에 속해서 수술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고 혈액 검사를 하는 등의 사전 준비부터 절개와 봉합까지 수술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부서 이동 없이 수술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저연차 인턴·레지던트보다 숙련도가 높은 경우도 많다.

▷전공의를 뽑기 힘든 병원으로선 이들보다 비용이 덜 드는 PA 채용을 늘리지 않을 까닭이 없다. 2020년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PA는 약물 처방, 검사, 수술 등 사실상 의사 업무 전반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PA를 제도화하면 될 터인데 의사들이 “간호사가 의사 가운을 입는다”며 반발해 논의조차 쉽지 않다. 석박사 수준의 과정을 밟고 면허를 따서 일하는 미국, 캐나다 등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체계적인 교육과 자격 검증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PA 제도화를 시도했지만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의사 단체에 밀려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정부가 ‘PA 카드’로 의사를 달랬다, 간호사를 달랬다 하면서 환자 안전을 도외시한 탓도 크다. 불법인 PA가 관행이 된 것은 그만큼 수술실과 입원 병동의 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해서다. 이번에 의대 정원이 늘더라도 의사 양성까지는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의사 단체의 벽을 넘지 못한 PA뿐만 아니라 비대면 진료,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 등도 논의를 서둘러 의료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다.

#진료보조#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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